교육 소비자인 학부모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첫 직선제로 실시되는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막판에 정치판으로 변질됐다. 정책과 공약은 일찍이 뒷전으로 밀려났고, 각 후보 진영은 ‘세(勢)’ 불리기와 상대방 흠집 내기에 골몰했다. 직선제가 정착하기도 전에 기존 정치의 나쁜 행태만 닮는 듯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주부 이혜정(39·서울 관악구) 씨는 “교육감을 뽑는지, 국회의원을 뽑는지 구분이 안 된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내건 구호에서부터 정치 냄새가 물씬 났다.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진다’(공정택 후보), ‘공교육 부활을 경계하는 전교조와의 전쟁 선포’(박장옥 후보)에는 정책에 집중하기보다 ‘특정 단체’와 대립 각을 세워야 한다는 정치적 발상이 엿보였다. 주경복 후보는 ‘미친 소, 미친 교육 몰아내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그의 선거방송 차에서는 촛불집회의 히트 곡 ‘헌법 1조’를 개사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공약 제시보다 반(反)이명박 유권자들을 겨냥한 선동처럼 느껴졌다.
▷이인규 후보는 ‘학교 급식에서 미친 소 추방’을 내걸며 광우병과 표를 연결시켰고, 이영만 후보는 ‘오감만족 교육’이라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구호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 여야 정치권까지 끼어들어 선거가 정당 간 대리전 양상마저 띠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24조)은 ‘교육감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후보 등록 신청 개시 일부터 과거 2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여야 한다’며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교육가는 누구보다도 도덕성과 균형감각 그리고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해 기성 정치인 뺨치게 정략적이거나 정파적이었던 인물이 교육감이 되면 교육 자체가 정치화된다. 선택은 결국 유권자가 한다. 선거운동이 혼탁했을수록 유권자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당이나 교원·노동단체의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후보의 공약을 보고 판단하자. 누구에게 내 아이의 앞날을 맡겨야 아이도 잘되고, 나라도 잘될 것인가를 놓고 귀중한 한 표를 던지자. 교육마저 정치가 된다면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