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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기홍]국민 선동하고 호도한 세력은 부끄러워해야

입력 | 2008-08-01 03:01:00


미국인들이 무심히 먹는 쇠고기가 한국에선 사회를 뒤흔드는 ‘공포’가 된 ‘현상’을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서울과 워싱턴의 심리적 거리는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쇠고기 논란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4월 말 한국 인터넷을 보다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미국에선 애완동물 사료로도 금지된 30개월 이상을 수입한다’ ‘미국인들도 미국 쇠고기를 안 먹는다’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었다. “협상이 이렇게 엉터리였단 말인가”라는 분노에 휩싸여 전문가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설명을 들어보니 대부분 허구였다. 예를 들어 ‘30개월 이상 소의 특정위험물질(SRM)을 애완동물 사료로 쓸 수 없다’는 외신 기사가 한국 인터넷에선 SRM 대목이 삭제된 채 ‘30개월 이상 소는 애완동물 사료로도 쓸 수 없다’는 식으로 흘러 다녔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토대로 5월 3일 ‘미국산 쇠고기의 오해와 진실’이란 기사를 썼다. 욕설이 담긴 댓글이 수천 건 달렸고 수백 통의 e메일이 왔다. 비난의 유일한 논거는 “동아일보가 노무현 정부 때는 광우병 위험을 증폭시키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을 물고 늘어지더니 180도 표변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기자가 쓴 26건의 쇠고기 기사는 ‘손톱만 한 뼛조각을 이유로 쇠고기 전체를 반송해 버린 과도한 대응을 지적’하고 ‘쇠고기 문제 해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결조건이 됐음’을 알리는 내용들이었다.

‘애완동물 사료…’ ‘미국인들도 미국 소를 안 먹는다’는 주장이 허구로 드러나자 인터넷에는 ‘한국에 수입될 고기는 미국인들이 먹는 것과 다르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의 85∼95%가 30개월 미만인 것은 육류업자들이 최소의 사육비용을 들여 고수익을 얻으려고 소가 어른 체격이 되자마자, 혹은 다 자라기도 전에 도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마치 한국 인터넷에선 ‘미국 국내에는 의도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골라 유통시키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수출할 것’이란 논리로 둔갑했다. 미국 내수시장에는 쇠고기 연령 제한이 없다. 마트에서도 월령별로 구분해 팔지 않는다.

물론 기자가 ‘미국산 쇠고기의 오해와 진실’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올해 2월 말까지만 해도 개방 반대 논리를 만드는 데만 골몰하다 갑자기 개방 쪽으로 방향을 튼 한국 공무원들이 ‘교활하고 노련하게 철저히 자기 이익을 챙기는’ 미국 대표단에 일방적으로 당한 협상이었다. 2006년 가을 뼛조각 반송에 ‘반미’란 ‘사(邪)’가 끼었듯이, 2008년 4월 협상에도 ‘정치적 고려’라는 ‘사’가 낀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막연한 공포와 불신이 과학과 이성을 압도하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기자는 솔직히 양국이 다시 협상하기를 바랐다. 물론 그 대가로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잃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이 ‘FTA보다는 0.0…1%의 식탁안전에 대한 위험이라도 제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우리 사회의 운명이고 한계라고 생각했다.

촛불집회는 결과적으로 더 나은 협상 결과를 이끌어 내는 동력을 제공했고 정권의 허술함에 일침을 놓았다. 역사는 그런 대목을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선동하고 허위 논리를 만들어 퍼뜨린 주체가 있다면, 거기에 동조해 그 상승 사이클에 일조했다면 각자 거기에 참여한 몫만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