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개봉하는 영화 ‘월·E’의 주인공은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월·E보다 진보한 이 영화 속 로봇들도 대부분 바퀴로 움직인다. 업무도 단순하다. 월·E는 폐기물 수집만 하고 ‘이브’는 식물을 탐사해 선장에게 전달만 한다. 청소로봇이나 패트롤로봇도 정해진 임무만 수행한다. 잠깐 생각해 보자. 원래 우리에게 익숙한 서비스로봇은 인간처럼 생기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2004년 개봉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이 로봇’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하지만 로봇 전문가들은 아이 로봇보다는 월·E가 실현 가능한 서비스로봇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 두 발로 걷는 것은 어렵다
염영일 포항지능로봇연구소장은 “서비스로봇의 개발 패러다임은 이족보행형 만능로봇에서 바퀴로 움직이는 단순로봇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로봇이 두 발로 걷고 균형을 잡으려면 관절마다 값비싼 고성능 모터가 필요하다. 이를 가동하려면 전력도 많이 소모된다. 국내 KAIST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휴보’나 일본 혼다의 ‘아시모’ 같은 이족보행로봇이 배낭처럼 생긴 대용량 배터리를 멜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은 전력이 적게 들고 이동도 쉽다. 영화 월·E에 등장하는 서비스로봇은 바닥에 그어진 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이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다. 로봇의 밑면에 장착된 레이저 센서가 바닥의 선 색깔을 인식해 이동 방향을 정한다.
염 소장은 “연구자 입장에서는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이 최고 기술이자 목표지만 당장 사용하기 위해서는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에 특정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빠르다”고 밝혔다.
○ 외모가 사람과 닮을 필요 없어
로봇의 형태도 굳이 아이 로봇처럼 얼굴, 팔, 몸통이 있는 인간형일 필요는 없다. 인간형 로봇은 오히려 특정 서비스를 위한 기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월·E에 등장하는 로봇처럼 사람을 편하게 이동시키려면 의자 형태가, 음식을 서빙할 때는 컵이나 쟁반이 움직이지 않게 구멍이나 홈이 파인 ‘팔’이 이상적이다. 굳이 사람처럼 팔과 손가락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손웅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기술본부장은 “사람이 편하게 하는 동작도 로봇에 적용할 때는 고난도 기술이 많이 요구된다”며 “사람처럼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을 나타내고 손가락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단계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전자제품에 인공지능만 첨부한 로봇도 등장했다. 사람이 찾는 음식을 알아서 꺼내 주는 냉장고나 사람의 위치에 따라 바람의 방향을 조절하는 에어컨이 그 예다.
서진호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박사는 “로봇은 움직이는 기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런 가전제품도 로봇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면서도 “앞으로는 로봇에 대한 정의가 바뀔 수도 있다”고 밝혔다.
○ 인간과의 의사소통이 난제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가운데는 국내에서 만들거나 개발 중인 모델도 많다. 포항지능로봇연구소에서 개발한 ‘수중청소로봇’은 월·E와 비슷하다. 이 로봇은 월·E처럼 무한궤도가 달린 바퀴로 용광로 바닥이나 심해저를 움직이며 인간이 청소하기 어려운 유해성 수중퇴적물을 청소한다.
이르면 내년 8월 공개되는 송도신도시의 ‘T-City’에는 월·E에 등장하는 로봇과 형태와 기능이 비슷한 패트롤로봇과 서빙로봇이 소개될 예정이다. 다만 패트롤로봇은 사고를 막기 위해 경비원과 함께 활동하게 된다.
물론 실제 서비스로봇이 영화의 로봇처럼 기능하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손 본부장은 “서비스로봇은 실시간으로 사람의 음성을 인식해 명령에 답해야 하는데 이런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어렵다”고 설명했다. 염 소장도 “사람은 쉽게 상대의 얼굴을 인식하지만 이를 로봇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로봇 개발 속도가 빨라 이런 장애들은 1, 2년 내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 인간-로봇 공존시대 준비 어떻게…▼
의료사고 등 책임소재 가릴
‘로봇 윤리헌장’ 제정 추진
영화 ‘아이 로봇’에 등장한 로봇은 미국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가 1942년 제시한 ‘사람에 대한 공격 금지’ ‘명령 복종’ ‘로봇 권리 인정’의 로봇 3원칙을 따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66년이 지난 지금은 더 구체적인 조항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김대원 명지대 정보공학과 교수는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려면 아시모프 박사의 로봇 3원칙보다 훨씬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개발자는 로봇 사용에 대한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고 생각해 첨단 기술을 적용하는 데에만 주력한다. 하지만 사용자는 악용될 수 있는 기술은 개발 단계부터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봇에 대한 ‘현실 감각’이 부족했던 1942년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서비스로봇은 인간이 제정한 법에 저촉되면 사용할 수 없다. 서진호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박사는 “간호로봇을 만들었지만 현재 법령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료 행위에 관한 법령에 간호사의 업무가 정의돼 있을 뿐 로봇에 대한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기능이 뛰어난 로봇이 등장한다 해도 간호사를 소극적으로 ‘보조’할 수 있을 뿐이다. 또 로봇이 자칫 의료사고라도 일으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정부는 개발자와 사용자, 인간과 로봇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막고자 ‘로봇 윤리헌장’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2월 국회에서 ‘로봇특별법’이 통과된 뒤 로봇전문가, 철학자, 종교학자 10여 명이 참여한 로봇 윤리헌장 제정 실무위원회가 로봇의 안전성과 로봇 윤리의 철학적 배경, 법적 책임의 근거 등을 연구 중이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