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핑크택시를, 영국은 핑크 레이디스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 전용 택시인데 차의 겉과 속이 모두 핑크색이다.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독일도 마찬가지다. 모스크바 여성 전용 택시는 2006년 8월 2명의 운전사로 시작해 6개월 뒤 27명으로 늘어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초 ‘여성 전용 콜택시 제도’를 발표했다. ‘여성이 행복한 도시(여행)’ 프로젝트의 하나다.
나는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느라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집이 안양시 평촌이어서 남들보다 항상 조금 일찍 모임에서 자리를 떠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가 끊긴 시간이면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 한다. 서울에서 평촌까지 넉넉잡아 1시간은 가야 한다. 택시비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늦은 시각 택시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울 때가 많다.
도착할 때까지 계속 긴장해서 내가 아는 길로 차가 가는지를 확인한다.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운전사를 만나면 한결 마음이 놓이지만 말실수를 할까 봐 매순간 조심한다. 가끔은 묵묵히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만 하는 기사가 더 편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택시를 잡아타고 정신을 바짝 차려 집 앞에 도착하고서야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는다.
3년 전 여성학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여성과 노동’에 관한 글을 써내면서 한국의 여성 택시 운전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여성, 택시 운전사 그리고 한국의 모습을 글에 담았다. 운전사도 여성이고, 손님도 여성이어야 하는 여성 전용 택시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결론에 담았다. 교수님과 친구들도 대부분 공감했다.
얼마 전에 여성 택시 운전사를 또 만났다. 핑크택시 이야기를 꺼내자 작년 가을부터 이미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사실이었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식이 현실에 반영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친구에게 여성 전용 콜택시가 생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하나같이 모른다고 대답했다.
여성 전용 콜택시가 생긴 지 11개월째다. 이 제도의 실효성에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전화를 걸어 요청해도 여성 운전사가 부족해 쉽게 이용하기 힘들어서다. 홍보도 부족했다. 여성 전용 택시는 자연스럽게 공중누각이 된 셈이다. 아직까지 여성에게 택시는 ‘가시방석’이 놓인 곳이다. 한국의 택시가 ‘핑크’로 변하기 전에 그 안의 ‘가시방석’부터 먼저 걷어냈으면···.
서지은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