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퍼펙트 주인공은 누구일까?
일제치하에서도 조선의 청년들은 야구를 통해 짓눌린 민족혼을 발산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두가지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한국야구 최초의 최초의 퍼펙트게임 주인공은 강남규(69) 전 OB 스카우트부장이다. 그는 휘문고 재학중이던 1958년 5월 25일 제13회 청룡기고교대회 서울예선 개막경기에서 서울공고를 상대로 한국야구사상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공식기록이 없어 완봉승으로 발표됐다가 다음날 한국 최초의 퍼펙트게임으로 인정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강남규에 앞서 한국인 최초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이는 따로 있다.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활약한 이팔용(1918-1976·후지모토 히데오)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 통산 200승87패, 방어율 1.90(역대 최저)을 기록하며 요미우리의 전설적 투수로 기억되고 있는 이팔용은 1950년 6월 28일 니시닛폰(西日本·세이부 전신)전에서 당시로서는 마구나 다름없었던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작성했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아직 퍼펙트게임의 위업을 달성한 투수가 없다. 다만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한화 정민철(36)이다. 정민철은 1997년 5월 23일 대전 OB전에서 무안타 무4사구 8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 8-0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통한의 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으로 한차례 출루를 허용, 퍼펙트게임 대신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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