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간판스타 팔로마 헤레라와 호세 마누엘 카레뇨가 주역무용수로 나선 발레 ‘돈키호테’(1일 공연). 생기 있고 발랄한 분위기와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인 무대였다. 홍진환 기자
발레 기교 정점 보여준 명연기
화려한 군무… “과연 세계최고”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12년 만에 두 번째 내한공연(7월 31일∼8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가졌다. 발레 스타의 생명은 짧고, 12년은 긴 세월이라 그동안 주역들이 여럿 교체되었지만 연기의 깊이와 기량은 여전했다.
ABT의 고전발레 해석의 특징은 구체적인 극적 묘사다. 멋쟁이 가마슈의 청혼을 거절하는 키트리의 매몰찬 대응, 이발사 바실리오가 돈을 많이 벌겠으니 딸을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 등은 짧은 순간의 무언극이지만 말보다 더 확실한 표현력을 지녔다.
‘돈키호테’는 1740년부터 발레로 만들어졌으나 이번 공연의 뿌리는 1869년 러시아 안무가 마리우스 페티파의 작품이다. 러시아에서 여러 차례 개작이 이뤄졌고 ABT에서 예술감독을 지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연출로 정착했으며, 그것을 현 예술감독 케빈 매켄지와 공동연출자 수전 존스가 약간 수정했다.
3막 그랑 파드되(남녀 주역무용수의 2인무)와 활기찬 군무가 직결되며 막을 내렸던 마무리를 전통방식으로 되돌린 동시에 돈키호테의 극중 역할을 늘렸다. 돈키호테의 방랑의 목적이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는 것임을 첫 장면부터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돈키호테가 키트리와 바실리오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인물로 부상한다. 둘시네아를 찾아 다시 떠나려는 그를 키트리가 만류해 마을에 머물게 한다는 해피 엔딩으로, 돈키호테가 극의 전개에 적극 가담하는 해석이다. 여기에 투우사 무희 탬버린 기타 등 스페인을 상징하는 소품이 총동원됐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루드비히 밍쿠스의 음악이 흥겨움을 더했다.
ABT의 오랜 간판스타 팔로마 헤레라와 호세 마누엘 카레뇨가 주역을 맡은 1일 공연에서 두 사람은 10년 파트너답게 편안한 무대를 자아냈다. 신기에 가까운 기량을 과시하다가 조화를 이루는 절묘한 박자에 어김없이 일치하는 호흡이 감동적이다. 특히 결혼식 그랑 파드되에서 두 스타의 등장은 관객의 시선을 잡았다. 신랑의 탁월한 회전기, 신부의 탄탄한 32회 푸에테(연속회전)는 기록적이다. 매우 빠른 리듬에 발끝으로 뛰듯 걷고 허리를 꺾어 도약하는 1막의 키트리 독무, 균형감이 돋보인 바실리오의 솔로도 품격으로 기예를 누르는 주역이 아니면 선보이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2일 오후 8시 주역 질리언 머피와 이선 스티펠은 결혼을 위해 온갖 소동을 불사하는 풋풋한 감성 묘사에 신명을 냈다. 새가 날듯이 공간을 이동하는 바실리오의 도약에 부채를 흔들며 스케이트를 타듯 빠른 속도로 환호를 불러일으킨 키트리의 푸에테가 연결되니 발레 기교의 정점이 이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첫날 오케스트라의 박자가 다소 어긋난 옥에 티를 제외하면, 돈키호테의 꿈속 사랑의 요정이 경쾌한 ‘춤집(춤추는 동작의 폭)’으로 발레 연기의 모범을 보였고, 투우사와 집시로 분장한 남성군무가 특히 화려했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가마슈와 로렌조의 뛰어난 마임 연기력은 물론이고 무대장치와 의상의 색감까지,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발레단의 면모를 과시했다.
문애령·무용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