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는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고, 늑장 개원한 지도 한 달이 돼가지만 상임위 배정을 비롯한 원(院) 구성도 못한 채 장기 표류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을 위한 어떤 정책도 법의 제정 및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올 스톱 상태다. 국회를, 더 나아가 국정(國政)을 이 지경으로 마비시켜 놓고 입만 열면 ‘민생(民生)을 걱정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의 위선(僞善)이 가증스럽다.
제1야당 민주당은 생산적인 국회 활동을 통해 민생 향상에 기여하면서 대안(代案)정당으로서의 위상을 다져 나가야 할 텐데 그러기는커녕 오직 이명박 정권의 뒷덜미 잡는 데만 매달리고 있다. 이것이 국회 표류의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다. 비록 의석수는 81석(총의석의 27%)에 불과하지만 사사건건 일이 안 되게 하는 데는 위력적이다.
한나라당은 총의석의 57.5%에 이르는 172석이나 갖고 있지만 확고한 리더십도,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열정과 논리도, 범여권의 일사불란함도 없으니 딱할 뿐이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나라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고, 여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의원이 18명에 불과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행보가 오히려 돋보인다. 이 총재는 어제 “상임위가 아닌 특위를 구성해서 장관 인사청문회를 대신하게 하거나 인사청문회 시한을 연장하는 건 국회법에 반한다. 귀책사유는 국회에 있다”고 여야 모두의 자성을 촉구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어제 “(장관 임명 강행으로 인한) 국정 표류나 비능률은 청와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총재의 말을 새겨들을 일이다.
이 총재는 북한의 ‘금강산 남측 인원 추방’에 대해 “북한이 우리 국민을 모욕적이고도 불명예스럽게 추방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금강산 인원을 철수시키고 개성관광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적반하장에 유감이나 표명한 정부보다 훨씬 분명하고 당당한 판단이다. 이 총재는 국회 개원 협상 때도 민주당의 쇠고기 재협상 주장은 지지하면서도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과 등원 거부는 반대하며 독자 등원 결정으로 여야 협상에 물꼬를 텄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 총재의 ‘법과 원칙’에 근거한 정국 판단 및 역할 추구에 주목하는 국민이 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