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19) 씨는 월 5만 원 안팎의 휴대전화 요금이 부담스러워 최근 요금상품을 변경했다. 자신의 휴대전화 이용 패턴에 맞춰 문자할인 요금제를 선택했지만 요금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김 씨는 “문자 요금이 싼 대신 통화료가 비싸지는 식이어서 결국 내는 돈은 비슷하다”며 “요금상품의 종류가 많아도 소비자들에게는 별 혜택이 없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업체들이 ‘고객 맞춤형’을 표방한 수많은 휴대전화 요금제를 내놓았지만 소비자 체감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요금상품이 소비자 선택권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미국은 평균 20종, EU는 14종
5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오스트리아 컨설팅업체 ‘액셀레이트’의 조사 결과 유럽연합(EU)의 주요 이동통신사가 운용 중인 요금상품은 평균 14종으로 집계됐다.
미국과 호주 등의 이동통신 요금상품도 업체별로 20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달리 국내 통신업체인 SK텔레콤, KTF, LG텔레콤의 요금상품은 각각 69종, 118종, 30종에 이른다. 3사의 평균 요금상품은 72종으로, EU의 5배를 넘는 셈이다.
이는 3세대(3G) 휴대전화 서비스의 등장으로 요금상품이 다양해진 탓도 있지만, 통신업체가 정부로부터 요금 인하 요구를 받을 때마다 기존 요금제를 변경하지 않고 ‘망 내 할인’ ‘패밀리 요금제’ 등 새로운 할인 상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요금상품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거나 꼼꼼히 따져보기 어려운 중·장년층은 다양한 요금제가 혼란스럽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새 휴대전화를 구입한 주부 최모(52) 씨는 “이동통신대리점 직원조차 요금상품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며 “판매점도 모르는 요금제를 가입자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민철 박사는 “통신업체는 다양한 맞춤형 상품을 제공한다는 취지를 강조하지만, 요금상품이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소비자들의 선택에 어려움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 해외는 요금 경쟁, 국내는 보조금 경쟁
국내 통신업체들의 요금상품이 종류만 다양할 뿐 실질적인 혜택이 부족한 것은 관련 기업들이 요금 경쟁 대신 휴대전화 보조금 경쟁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올해 2분기(4∼6월) 3개 이동통신 업체가 휴대전화 보조금 등에 쓴 비용만 1조7500억 원에 이른다. 싼 요금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기보다 휴대전화 구입 보조금 경쟁에 치중한다는 의미다.
반면 최근 해외 업체들은 잇따라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아 대조를 보인다.
AT&T,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T-모바일 등 미국의 대규모 통신사들은 올해 2월 ‘99.99달러(약 10만2000원)에 무제한 통화’ 상품을 내놓으면서 요금 경쟁에 불을 지폈다.
일본 소프트뱅크모바일은 지난해 월 기본료 980엔(약 9200원)에 오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자사(自社) 가입자 간 무료통화를 보장하는 ‘화이트 플랜’을 출시해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NTT도코모 등 경쟁 사업자들은 ‘반값 할인’ 상품으로 맞불을 놓았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약정 요금제 가입자의 할인 혜택이 갈수록 커지는 등 요금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수영(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장은지(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