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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이라크戰 위한 ‘편지 위조’ 의혹

입력 | 2008-08-07 03:00:00


“9·11테러 주모자중 한명 이라크서 훈련받았다”

美언론인 신간서 주장… 백악관 - CIA “사실 무근”

“당신이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비록 당신이 싫어하겠지만.”

2003년 가을 조지 테닛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CIA 근동과 책임자인 롭 리처 씨를 불렀다. 리처 씨는 백악관 문장이 찍힌 우윳빛 종이에 적힌 임무를 내려다봤다. 그것은 허구를 만들어 내라는 지시였다.

미국 사회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신간 ‘더 웨이 오브 더 월드(The Way of the World·사진)’의 한 대목이다.

1993∼2000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일했고 1995년 퓰리처상을 받은 론 서스킨드 씨가 5일 내놓은 이 책에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겼다.

폭로의 핵심은 ‘편지 위조’다.

이라크 침공 후 ‘전쟁의 명분’ 만들기에 골몰하던 백악관 관리들은 테닛 국장에게 사담 후세인 정권과 알카에다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편지 조작을 지시했다. 테닛 국장은 리처 씨와 CIA 내 이라크 공작그룹 책임자인 존 마구이르 씨에게 이 업무를 맡겼다.

후세인 정권 시절 이라크 정보기관 총책임자인 잘릴 하부시가 2001년 7월에 쓴 것처럼 돼 있는 이 편지는 ‘9·11테러의 주모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 아타가 이라크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CIA는 이라크 침공 후 500만 달러를 주고 요르단에 정착시켜 정보원으로 삼은 하부시에게 가짜 편지를 가져가 서명을 받았다. 이 편지는 그해 12월 영국 언론에 보도됐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권이 물러날 수도 있는 충격적 주장을 펴면서 서스킨드 씨는 리처 씨와 마구이르 씨를 실명으로 인용했다.

그러나 토니 프래토 백악관 부대변인은 “백악관이 편지 조작을 지시한다는 생각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저속한 저널리즘이다”라고 비난했다.

테닛 전 국장도 “나는 재임 중 후세인-알카에다 연관성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이상의 그림을 그리려는 행정부 내 일각의 시도에 저항해 왔다”며 편지 조작을 일축했다.

리처 씨는 워싱턴포스트 등에 e메일을 보내 “책에 서술된 것처럼 문서를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스킨드 씨는 AP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소스와의 오랜 기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내용이며 인터뷰는 다 녹음돼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