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챔버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리더그룹. 왼쪽부터 박상연(비올라), 미치노리 분야(콘트라베이스), 배익환(바이올린), 조영창(첼로) 씨. 김경제 기자
화가 김범수 씨의 그림 ‘비욘드 디스크립션’과 바이올린을 그래픽으로 합성한 이미지.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린다.’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무대에는 영화 필름을 사용해 만든 형형색색의 동그라미들이 어우러지는 화가 김범수 씨의 대형 걸개그림 ‘비욘드 디스크립션’이 전시된다. 그리고 그 앞에서 23명의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작곡가 전상직 씨가 작곡한 ‘현을 위한 비욘드 디스크립션’을 연주한다. 1996년 창단된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서른 번째 정기 연주회를 갖는다. 이 실내악단의 대표 상품은 ‘화음(畵音)프로젝트’다. 이들의 연주회장은 곧 미술관이고, 전시장은 콘서트홀이 돼 왔다. 거기엔 늘 새로 태어나는 같은 이름의 ‘그림(畵)’과 ‘음악(音)’이 있었다.
○ 연주회 뒤엔 그림값 올라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비롯해 쇤베르크, 칸딘스키, 메시앙 같은 수많은 예술가가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와 발레뤼스, 말러와 클림트 등 경계를 넘어선 만남이 없었다면 그들의 예술이 가능했겠습니까.” (미치노리 분야·콘트라베이스)
화음프로젝트는 13년 동안 경기 남양주시 서호미술관을 비롯해 가나아트센터, 스페이스C,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등 미술관과 연주홀에서 열렸다. 최정화, 다니엘 부엔디 등 66명의 화가와 백병동 이영조 임준희 씨 등 39명의 작곡가가 참가해 왔다. 화음프로젝트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박상연(비올라) 씨는 “화음프로젝트는 오늘의 음악과 오늘의 미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난해한 인상을 주는 ‘현대음악’이라는 말 대신 ‘현장음악’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콘서트홀이 아닌 현장에서 듣는 오늘의 음악이지요. 미술, 영화 등 시각적인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듣게 해주는 중계자 역할을 해줍니다. 영화 속 음악을 화면 없이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5분도 못 들을걸요.” (박상연)
매회 화음프로젝트 연주에 참가한 화가들의 작품은 값이 오른다. 해당 작품이 10∼15분짜리 음악으로 다채롭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 씨는 “그림은 예술품이자 상품적 가치를 지녀 팔리기도 하지만 음악은 순간의 예술이어서 그렇진 않다”며 “하지만 앞으로 화집과 음반으로 화음프로젝트의 소장 가치를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미치노리 분야와 배익환 씨를 비롯해 첼리스트 조영창, 비올리스트 마티아스 북홀츠 등 4명의 리더그룹이 단원들과 토론을 통해 악단을 이끌어간다. 화음프로젝트 리허설 도중 의견 다툼도 적지 않지만 웃음도 끊이지 않는다.
“그림은 맘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연주는 한 번 하면 끝이에요. 연주할 때는 정밀화처럼 정확하게, 수묵화처럼 과감하게 감정을 컨트롤해 나가야 해요. 음악가들은 악보를 외우는 버릇이 있어서, 그림을 한 번 보면 다 외워버린다니까요.(웃음)” (조영창)
“미술은 한눈에 감동받지만,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에요. 누구나 하루는 24시간이고, 1시간은 60분이고, 메트로놈 박자의 움직이는 시간은 다 똑같아요. 그 시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음악이지요. 그러나 음악과 미술의 공통점은 둘 다 색깔이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정확한 테크닉이 중요하지만 나중엔 규율을 깨고 자신만의 창의성과 색깔을 담아내야 대가가 될 수 있어요.” (배익환)
최근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알레스 뮤직) 등 3장의 음반이 국내에서 출시된 첼리스트 조영창 씨는 이번 음악회에서 하이든 첼로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2만2000∼5만5000원. 02-780-5054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