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 대우증권 프로젝트금융본부 채봉섭 팀장의 앞에 2000ha의 옥수수 농장이 펼쳐졌다. 바이오 에탄올의 원료작물로 각광받고 있는 옥수수에 투자할지 여부를 결정하려고 현지답사에 나선 것.
그는 서울에서 자카르타까지 7시간,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2시간 비행기를 탔다.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이동한 뒤 비포장도로를 차로 3시간 넘게 달려 이 곳에 도착했다.
그는 "현지 농장주에게 자금을 지원해주고 나중에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거나, 지분을 매입해 배당수익을 받는 등 여러 형태의 자기자본투자(PI)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증시 침체가 이어지고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한국의 증권사들이 해외 농산물, 에너지자원 등 실물(實物)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수익성만 높일 수 있다면 마다않고 오지(奧地)까지 찾아 나서고 있다.
●증권맨, 돈 찾아 '오지 삼만리'
한국투자증권 자원대체투자금융부의 한세원 과장은 지난달 필리핀 북부 산악지방에 다녀왔다. 이 지역에 새로 건설될 발전소에 투자할지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투자증권은 발전소를 짓는 현지 업체에 직접 증권사의 자기자본을 투자하거나, 기관투자가를 연결시켜준 뒤 수수료를 받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초 광업권을 보유한 현지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러시아 사할린에 있는 유연탄 광산에 투자하기도 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지난해 라오스에서 바이오디젤 원료작물인 '자트로파' 농장에 5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석탄개발 사업에 수십 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동양종금증권도 파라과이의 자트로파 농장, 인도네시아의 광산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대우증권 프로젝트금융본부의 유상철 부장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실물투자라 하면 부동산과 선박투자가 전부였다"며 "앞으로는 화석연료, 식량자원이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맨들 점퍼, 운동화 차림으로 나서다
'증권사 직원' 하면 양복에 넥타이를 맨 반듯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증권사 실물투자 담당자들은 한 해의 3분의 1 정도를 점퍼에 운동화를 신은 채 동남아시아 고산지대 등을 돌아다닌다. 미래의 '황금시장'을 찾기 위해서다.
투자처가 대부분 외부인의 발길이 적은 곳이라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대우증권 채 팀장은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에는 외부인을 위한 식당이 거의 없어 머무는 이틀 동안 서울에서 챙겨간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한 과장은 "필리핀에는 섬이 많아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려면 6시간씩 배를 타야 한다"며 "시간을 아끼려고 밤에 배에서 잠을 잔 뒤 오전에 내려 일을 보는 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투자 대상국들이 주로 개발도상국이어서 겪는 어려움도 있다. 국내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사업을 추진하러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정부 관료가 '기부금'(contribution)이라며 뇌물을 대놓고 요구해 당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연기자 chance@donga.com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