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는 세계 여성 팬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팬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는지 주시했다. 주인공들의 옷, 가방, 구두 등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즉시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 다양한 스타일로 개성을 표현하던 뉴욕 여성들이 ‘섹스 앤드 더 시티’ 방영 이후 똑같은 옷만 걸치고 다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섹스 앤드 더 시티’ 신드롬이 서점가로도 확산되고 있다. 5월 미국 등 각국에서 개봉된 영화판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선보인 책 한 권이 히트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영화 속에서 캐리는 애인 미스터 빅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 제목은 ‘위인들의 연애편지’.
서점마다 이 책을 찾는 문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서점으로 달려간 ‘섹스 앤드 더 시티’ 팬들은 뜻밖의 사실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캐리가 빅에게 읽어준 책 구절이 실제 위인들이 쓴 연애편지 내용은 맞지만, 그 편지를 묶어 이런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위인들의 연애편지’는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책이었다.
책의 히트 가능성을 직감한 출판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영국의 팬 맥밀런이 빨랐다. 팬 맥밀런은 위인들의 연애편지를 모아 영화 속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책(사진)을 최근 펴냈다.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가짜 책에 실망했던 팬들이 이제 진짜 책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책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바이런, 키츠, 마크 트웨인, 나폴레옹 등 여러 위인이 등장한다.
“하루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보낸 날이 없으며, 하루도 당신을 포옹하지 않고 보낸 날이 없습니다.”(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내가 이 마지막 페이지를 채워가는 동안 편지지 위로 눈물이 끝없이 떨어집니다.”(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시인 바이런은 유부녀 캐럴라인 램을 집요하게 쫓아다닌 일화로 유명하다. 이뤄지기 힘든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이 편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무덤 너머에서도. 이 일을 누군가 알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었고, 지금도 당신의 것입니다.”
베토벤의 연애편지는 누구를 향한 편지였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숨진 뒤 발견된 편지 3통의 수신인은 ‘불멸의 연인’으로만 적혀 있었다. 연도도 적혀 있지 않아 어느 시기의 어떤 여인이었는지 추측할 수도 없었다.
팬 맥밀런은 홈페이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며 위인들이 편지에 쓴 사랑에 대한 정의를 일부 옮겨 실었다.
“사랑은 맛있는 독(毒)이다.”(17세기 영국 극작가 윌리엄 콩그리브)
“사랑은 차가운 비처럼 사람의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