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 정부중앙청사 별관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MBC PD수첩의 잘못된 보도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불필요하게 확산됐다”고 밝힌 뒤 “한미 FTA는 한국이 먼저 비준하는 게 낫다”고 촉구했다. 박영대 기자
한국은 세계 11위의 교역국이지만 통상부처 기관장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통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적 관심이 가장 떨어지는 정책 분야이기도 하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명도와 대중적 인기를 함께 가진, 흔치 않은 인물이다. 김 본부장은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 이후 밥값을 받지 않겠다는 식당 주인, 택시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운전사를 가끔 만난다고 한다. 최근에는 등산을 갔다가 ‘어깨’로 보이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식사 자리에 초대하려고 해 난감한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한미 양국의 정상(頂上)이 만나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을 다짐한 6일, 정부중앙청사 별관 집무실에서 김 본부장을 만났다.
○ 참여정부 ‘쇠고기 개방’ 약속 없었으면 한미 FTA 결렬됐을 것
이날은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가 한창인 가운데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이임한 날이기도 하다. 소회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언론중재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검찰 수사,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됐지만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잘못된 보도 때문에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불필요하게 증폭됐지요. 문제가 이렇게 확산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정 장관 등이 일부 책임을 진 것으로 봅니다. 저 역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질 것입니다.”
‘광우병 위험은 과장됐을지 몰라도 협상이 굴욕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 협상도 양국 검역당국이 국민 건강을 우선시해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에 따라 협상한 것으로 굴욕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국민의 우려가 클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소통에 좀 더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여야가 쇠고기 시장 개방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는 이른바 ‘설거지론 대(對) 선물론’과 관련해 김 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에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서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하면서 ‘쇠고기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구두로 약속했다”면서 “그 통화가 한미 FTA가 타결되는 결정적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자연인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약속한 것이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널리 공개됐습니다. 상호 신뢰 가운데에서 이뤄진 진솔한 약속이었다고 봅니다. 더구나 쇠고기 문제는 정권 교체를 떠나 해결돼야 할 현안이었습니다. 당연히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하지요.”
쇠고기 협상은 끝났지만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서 들여온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 금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먹으면 국민 건강에 위해를 준다는 과학적 증명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 간 합의를 뒤집는 국내 입법을 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무역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통상정책 전체에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해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미 수입위생조건 부칙에 ‘한국 정부는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문화한 데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FTA 전략, 선택과 집중으로 변경…日-中과는 시간 걸릴 듯
쇠고기 수입 논란 등을 거치면서 어렵게 타결된 한미 FTA는 1년 넘게 양국 의회의 비준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11월 미국 대선이 끝난 뒤 크리스마스 휴가까지 3주간 한미 FTA의 의회 비준이 미-콜롬비아 FTA와 동시에 처리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본부장은 “미국 의회가 ‘자동차 재협상’ 등의 조건을 붙여 비준해 버리면 우리가 몹시 힘들어진다”면서 “이런 장벽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국회가 먼저 통과시키는 게 상수(上數)”라고 말했다.
세계 1위 시장인 유럽연합(EU)과의 FTA는 연내 타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김 본부장은 원산지 규정 등 쟁점 때문에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EU는 회원국 간 분업의 경우 ‘역내 생산’으로 인정받는다. EU에 비해 역외 가공 비중이 높은 한국은 동일한 원산지 기준을 적용할 경우 관세 감축 대상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품목은 ‘역외 가공’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EU가 다른 국가들과의 FTA에서 자신들의 원산지 규정을 수정한 선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과는 수정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원칙을 허문 것이지요. 이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우리 정부도 FTA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FTA가 타결되고, 유럽과의 FTA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FTA 지각생’이라는 조급함을 가질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동시다발적 FTA 추진’이라는 전략 아래 많은 국가와 한꺼번에 FTA를 하려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가별로 무게를 달리 둘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페이스대로 FTA에 접근할 생각입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및 중국과의 FTA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그는 전망했다.
“일본과는 무역 역조가 크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더 예민한 가운데 독도 문제로 국민 전체가 공분하고 있어 FTA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중일 삼각 FTA도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 스스로 열지 않으면 남에 의해 열려… 적극적 개방이 살길
김 본부장은 “한국은 타국의 강요로 문호를 열고 결국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 때문에 개방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타의에 의해 시장을 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전략과 안목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시장을 넓혀 가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경쟁은 피곤한 것이지만 경쟁 없이는 경쟁력이 배양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게 그의 일관된 어법이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승부사 기질을 가진 김 본부장은 자신의 한계와 경쟁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다. 나이(56) 때문에 최근 암벽 등반은 그만두었지만 요즘도 패러글라이딩, 윈드서핑을 비롯해 연을 띄워 바람의 힘으로 물 위에서 보드를 타는 ‘카이트보딩’ 등을 즐긴다고 한다.
그는 주말이면 1200cc급 경주용 오토바이에 올라 교외로 나간다. 최근에는 강원도의 한 전용 경기장에서 레이스를 하기도 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자유를 누릴 자유가 없죠. 특히 국민이 많은 관심을 보여 책임과 부담이 큽니다.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난 뒤에는 자연과 가까이 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정리=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김종훈 본부장
△1952년 대구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외무고시 8회 △주미대사관 경제참사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