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기 위한 ‘두 마리 토끼’, 유창성과 정확성
미국에서 누군가에게 “I know, you know, we same know”라고 하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We both know that(우리 둘 모두 그걸 알아)”이란 뜻으로 이해한다. 콩글리시(Konglish)가 먹히는 건가?
만약 미국인을 만났는데 “We both know that”이라는 정확한 문장표현이 선뜻 생각나지 않아서 “well…” “so…” 하면서 주저하면 상대는 기다려주지 않고 가버린다.
동갑내기 희경과 수현이 처음 만나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초등학생 희경. “You name what?” “Me. Heekyung. You what?” “Nine?” “Your school where?”
초등학생 수현. “….” “….” “Suhyun.” “Yes. I'm nine years old.” “….”
희경은 말이 술술 나와 문법에 맞지 않지만 여러 마디를 했다. 반면 수현은 겨우 제 이름과 한마디 말을 정확한 문법에 따라 말했다. 희경과 수현 중 누가 영어를 더 잘하는 것일까?
언어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유창성(fluency)’과 ‘정확성(accuracy)’의 차이라고 한다. 유창성은 ‘얼마나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하는가’이고, 정확성이란 ‘얼마나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구사하는가’이다. 다시 말해, 유창성이란 정확하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더라도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머뭇거림 없이 쉽고 자연스레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정확성이란 특정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선택해 문법에 맞게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두 가지를 다 갖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만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한다’면 외국어 습득과정에서 어느 요소가 더 중요할까?
‘꿀 먹은 벙어리’ vs ‘겁 없는 영어’
사람들은 흔히 “학교에서 10년이나 영어를 배웠는데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겠더라”고 말한다.
가족과 외국여행을 떠난 아버지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외국인이 두렵기도 하거니와 ‘만약 문법에 맞지 않게 말하면 망신이니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못한 어머니가 급기야 손짓 발짓과 기초적인 영어단어 몇 개로 상황을 해결한다.
결국 아버지는 정확성을 중시하는 바람에 정확한 영어표현을 생각해 내느라 오히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어머니는 비록 문법엔 맞지 않지만 과감하게 영어를 구사하여 의사소통에 성공한 셈이다.
이런 사실은 언어학습 초기단계에 놓인 아이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막 영어를 익히는 단계라면, 유창성이 우선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단 얘기다.
이제 막 소리 내어 단어와 짧은 영어문장을 말하는 아이라면 틀리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어를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말하는 자신감이 영어학습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정확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를 지적하다 보면, 아이는 두려움에 입을 열지 않게 되면서 영어학습의 동기와 흥미를 잃는다. ‘영어는 어렵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유창성을 높이려면?
노래 찬트를 이용하라
아이의 영어 유창성을 높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노래와 찬트는 훌륭한 놀이거리이자 학습 자료다. 좋은 노래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이 즐겁게 부른다. 뜻을 모를지라도 귀에 익은 외국노래를 흥얼거리듯, 내용이 어렵거나 분량이 긴 문장이라도 리듬과 멜로디를 이용해 풀어낸다면 아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여기에 간단한 율동이 곁들여진다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욱 쉬워진다.
노래와 찬트는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동화 속 긴 내용의 영어라도, 리듬과 멜로디의 옷을 입혀 전달하면 아이가 더 쉽고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영어의 기초표현을 노래와 찬트를 통해 가르치는 이유는 이것이다.
노래와 찬트로 영어를 가르칠 때도 아이 수준에 맞는 수준별 접근법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유아에게 “Who took the cookies from the cookie jar?”를 말하게 하면서 찬트 게임을 시킨다거나, 초등학생에게 찬트인 ‘Five little monkeys’를 가르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내용이 같다면 단순한 멜로디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랩이나 힙합, 재즈 스타일로 가르친다면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 게임이나 보드 게임도 영어를 가르치는 좋은 방법. 예를 들어, 게임을 하기에 앞서서 질문을 듣고 대답을 하게 만든다거나, 서로 자신의 카드를 보여주지 않은 채 자신의 카드에 담긴 그림이나 단어를 영어로 설명한 뒤 같은 카드를 가진 파트너를 찾는 게임을 생각할 수 있다.
처음부터 완전한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는 없으므로, 문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자유롭게 말하도록 격려하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격려와 칭찬을 할 때는 다정한 목소리와 눈빛도 필요하다.
아이의 정확성을 높이려면?
경험에서 스스로 찾게 하라
정확성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초급단계에서는 유창성이 중요하지만, 어느 시기에 이르면 유창성과 동시에 정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정확성은 영어로 읽고 쓰는 행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성을 길러주기 위해선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표현을 말해주는 방식이 한층 효과적이다. 아이가 “I ping pong play yesterday”라고 말했다면, 아이에게 “주어 다음엔 동사가 와야 해. 그리고 과거 시제이니까 동사의 과거형을 써야 해”라고 지적하면서 바른 표현으로 다시 말해보라고 강요하면 어떨까? 아이는 낯을 붉히면서 영어를 더욱 어려워할 것이다.
이보다는 “Oh, you played ping pong yesterday?”라고 아이의 말을 올바른 표현으로 수정한 뒤 되풀이해서 아이에게 들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되풀이해 주어도 아이가 여전히 “Yes, yes, I play yesterday”라고 하더라도 실망감을 드러내거나 정확한 표현을 따라해 보라고 다그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는 아이들도 문법을 배우는 순서를 밟는다. 그래서 단계에 맞지 않는 너무 어려운 문법은 교정을 해 주어도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자신이 말한 표현과 다른 사람이 말한 표현 사이에서 다른 점을 찾아 그 차이점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 아이는 점차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익혀 간다. 만약 아이가 영어 읽기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스토리 책을 반복적으로 읽도록 함으로써 문법에 맞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학부모라면 내 아이가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잘 유지해 유창하고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유창성과 정확성은 강요와 다그침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이의 수준을 이해하고 또 아이의 발전을 기다려주는 마음, 그리고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박향균 엘림에듀 영어사업본부 브라운 교육포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