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더위를 잊고 오랜만에 시원하고, 가슴 벅차게 보낸 주말이었다. 일요일인 어제 박태환(19·단국대)은 남자 자유형 400m 우승을 거머쥠으로써 우리의 올림픽 역사를 다시 썼다. 1936년 8월 9일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그로부터 56년 뒤인 1992년 8월 9일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쾌거였다. 석 달 가까이 불법 촛불시위와 증오, 그리고 폭력이 넘치던 주말의 광화문에도 기쁨과 환호가 넘쳤다.
한국 수영이 올림픽에 도전한 지 44년 만의 첫 금메달이고, 일본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자유형 1500m에서 우승한 이후 동양인 남자 선수로는 무려 72년 만의 자유형 금메달이다. 자유형은 평영 배영 접영에 비해 체격과 힘이 순위를 가른다. 올림픽 역사가 보여주듯 키가 작은 동양 선수가 서양 선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劣勢)인 종목이다. 그러나 박태환은 작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이 벽(壁)을 넘었다. 신장 183cm이면서도 190cm를 넘는 장신들과 맞붙어 너끈하게 이겼다. 땀 흘려 기량을 갈고닦는 자 앞에 못 넘을 벽이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박태환에 하루 앞서 최민호(28·한국마사회)는 남자 60kg급 유도 결승전에서 올해 유럽선수권대회 챔피언을 들어메치기 한판으로 제압했다. 체중 조절 실패로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의 고배’를 마셨던 그는 절치부심 끝에 금메달을 안게 되자 기쁨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외로움에 떨면서 방황을 거듭하던 최민호는 머리맡에 ‘불가능은 없다’는 좌우명을 써놓고 다시 올림픽을 준비했다. 그는 심판의 판정을 기다릴 새도 없었다. 다섯 경기를 연속 한판으로 이기는 통쾌한 행진을 벌였다.
이날 한국 여자 핸드볼팀도 조별리그 B조 1차전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8점 차 점수를 극복하고 29 대 29의 무승부를 만들어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드라마를 다시 연출했다. 러시아는 2005,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나라다. 어제는 여자 양궁도 단체전에서 6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우리의 여궁사(女弓師)들은 만리장성을 넘어 세계 양궁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투혼과 낭보는 더위와 불경기에 지친 국민에게 청량감과 함께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면 된다(Can do)’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