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국민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나기는 했지만 최근 ‘독도’는 뜨거운 화두(話頭)였다. 일본이 중등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면서 불거진 이번 일은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바꾸면서 더욱 확대됐다. 지명위원회가 이를 원상회복하고 다른 이슈들이 등장하면서 이번 사건도 소멸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독도 관련 문제가 발생하고 확산된 뒤 소멸하는 과정은 조건반사적이거나 도식적이라는 인상도 든다. 먼저 일본을 성토하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증거자료들이 등장한다. 이어 우리 스스로 독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자책과 함께 책임공방과 장기적인 대책마련을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또 분위기가 고조될 때는 자동차와 전자제품 화장품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본 관련 기업들에 손실을 입히는 ‘민족주의적 소비’가 나타난다. 특히 자동차는 국적 개념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품이어서 반일감정의 주요 분풀이 대상이었다. 주차된 일본차에 흠집을 내거나 일본차 매장 입구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보고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뭔가 하나 빠졌다. 불매운동과 일본차에 대한 ‘테러’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7월 일본차의 국내 판매는 6월보다 크게 늘어났다. 국민들의 애국심 또는 독도에 대한 관심이 감소한 것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글로벌 경제활동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소비를 정치적, 민족적, 역사적인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고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정한다는 의미다.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올해 중국 13개 도시 소비자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애국심이 실제 구매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중국인의 민족주의가 실제 구매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B3면에 관련기사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경제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이 강하고 소비도 글로벌화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지불해야 할 대가가 높아질수록 철저하게 경제원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100원짜리 사탕을 살 때는 민족적인 소비를 할 수도 있지만 3000만 원짜리 자동차는 정치나 역사 철학 등 형이상학적 개념보다는 개인에게 돌아오는 실질적인 혜택을 감안해 더욱 신중해진다는 뜻이다.
독도 문제를 극복한 ‘일본 자동차’는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생존력을 가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높지 않은 가격에 튼튼하고, 되팔 때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면 이를 마다할 소비자는 거의 없다. 러시아와 중국까지 시장경제에 편입된 지금, 글로벌 베스트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善)’이면서 동시에 ‘민족주의적 생산’일 수도 있다.
원자재 값 급등과 미국발(發) 경제 불안, 노사갈등, 불법 촛불집회, 9월 금융대란설 등으로 한국은 혼란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최고경영자에서부터 노동자까지 ‘최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만은 흔들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