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방랑자 프레야 스타크/제인 플레처 제니스 지음/이은주 옮김/달과 소
《“1928년 3월 14일, 책과 옷과 리볼버 권총을 챙긴 뒤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까지 16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를 9시간 반 동안이나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떤 방도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탈리아로 돌아가 시골 생활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편견의 땅 중동, 마음을 열고 탐험하다
1927년 겨울, 프랑스가 위임 통치 중인 레바논에 34세 영국인 여성이 도착했다. 키는 153cm 정도였고 병석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윈 모습이었다.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이 여성은 뒤늦게 중동 지역에 관심을 가져 28세에 아랍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요리사와 시종 한 명을 거느리고 나귀와 조랑말에 몸을 실은 채 평생 거친 중동을 여행했다. 시리아, 요르단, 아라비아 반도,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책은 90세까지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던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1893∼1993)에 대한 전기다.
레바논 산악 지대에 있는 이슬람의 한 종파인 드루즈파를 찾아갔던 그는 프랑스 군대에 잡혀 국제 분쟁을 일으킬 뻔했다. 유럽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이란 서부 산악 지방인 루리스탄을 여행했고, 아라비아 남부 고대 향료 무역로의 잊혀진 도시를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동 전문가로 영국의 첩보 활동에 기여했다. 중동 지역이 큰 변화를 겪던 시기 4권의 자서전과 8권의 서간집을 포함해 30여 권의 책을 쓴 그는 1993년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처럼 매력적인 삶의 비결은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었다고 이 책은 전한다. 그는 ‘아랍 놈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영국 식민지 사회에서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슬람 사원의 내부를 보기 위해 변장을 하고 이교도에게는 출입이 금지돼 있는 알 카지미야 모스크로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반군에 포위된 바그다드의 대사관 안에서는 티그리스 강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는 태연함을 보였다.
또 다른 비결은 타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프레야 스타크는 1938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행가가 갖춰야 할 첫째 덕목으로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는 기준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을 꼽았다. 그는 이슬람의 교리를 공부해 아랍 사람들에게 존중과 신뢰를 얻었다. “왜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어엿한 호텔에서 묵지 않는지 궁금한 일”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걱정 속에서도 그는 현지인 가정에서 묵었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권삼윤 씨는 “프레야 스타크는 현지인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험난한 곳을 돌아다니는 고행길을 선택했다”며 “나는 그녀가 했던 그 방식을 가능한 한 따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동을 휘젓고 다녔던 이 여성의 삶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20세기 전반 중동 정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1941년 영국을 지지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바그다드로 온 프레야 스타크는 라시드 알리 전 총리가 반(反)영국 성향 쿠데타를 일으킬 무렵 하지 아민이라는 이슬람 성직자를 만난다. 아민은 쿠데타의 핵심 인물로 유대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아랍의 독립을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프레야 스타크는 그렇게 시대의 한복판에 있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