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 화려하지만 무서워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휴가라는 것이 따로 없고 휴가를 갈 돈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집에서 시원하게 수박을 갈라 먹으면서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이 최고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은 나에게 최고의 휴가 보너스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은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을 한다고 해서 세간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올림픽 개막식이야말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이므로 늘 최고의 연출자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큰 복합행사이며, 개최국 문화의 특징 나아가서는 개최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행사가 아닐까 싶다.
그간의 올림픽 개막식을 훑어보면 올림픽 개최를 대하는 각 국의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아시아 국가에게는 올림픽 개최가 전 세계에 개최국의 존재를 알리고 정치경제적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기회를 살려 자국을 홍보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 올림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전 지구적인 행사의 의미를 살리기 보다는, 개최국으로서의 수행능력과 투자가치를 과시하고 검증받으려는 목표가 더 절실해 보인다.
최근 들어 한편에서는 반중(反中)정서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운동까지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런 이면을 무시하고 보더라도 이번 올림픽 개막식 역시 개최국의 능력과시가 주목표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는 행사였다.
물론 능력과시가 딱히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어떤 능력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러면 장이머우의 전략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을까?
내가 볼 때 장이머우의 전략은 그다지 고수의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중국이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 올림픽 개막식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룰 수 있는 자본과 기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 과거의 그런 자원이 현재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미래에는 또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 그런 최소한의 맥락화나 비전제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맥락화와 비전제시는 개막식의 전반적인 미학과 정서에서 묻어 나오는 것인데, 이번 개막식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주류화, 중앙집권화, 고정화, 계몽화라는 낡은 욕망이었고 이런 정서가 과연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세계가 얼마나 마음을 열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막식의 화려함을 얘기하는데, 사실 엄청난 물량공세와 화려함은 어느 올림픽이나 마찬가지이고 그것으로 승부수를 걸 수는 없는 시대이다. 영화나 미술에서 질리도록 보아온 첨단 미디어와 신기술도 이제는 별로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액션 영화에서 보아왔던 장엄한 스펙터클이 재현될 때에도 경이로움이 느껴지기 보다는, “아니, 왜 저런 것을 사람이 하지? CG로 하면 될 것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우리는 스펙터클에 익숙하다.
강약조절 없이 계속되는 대규모 퍼포먼스와 엄숙한 음악은 사람들에게 간극과 여백을 주지 않고, 그 틈에서 발생하게 되는 상상과 해석을 봉쇄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는 느낌이 들었고, 따라서 계속되는 화려한 자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루하고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다. 나는 ‘붉은 수수밭’으로 그의 영화를 처음 접했었는데, 영화의 화려한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무척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에도 그의 영화가 내게는 다 그러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클리셰(판에 박은 문구, 진부한 표현)를 반복하고 있고, 그것을 깨려는 노력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개막식에서 볼 수 있었던 역사, 사랑, 평화, 미래 등의 개념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은 기존의 틀을 깨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화려한 볼거리로 눈가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더더욱 고루해 보이는 것이다.
사실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바로 선수단 입장이었다.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나라가 존재하고 얼마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퍼포먼스였다. 운동선수 특유의 순수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다양한 생김새, 행동, 패션 등을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하지만 편치만은 않았던 장면이 있었으니, 선수단 입장 내내 서서 몸을 움직이며 선수단을 반기는 자원봉사자들의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그냥 서서 웃는 표정으로 반기면 안 되었던 것일까? 내가 선수단이라면 무더운 날씨에 땀에 젖어 그렇게 내내 뛰고 손을 흔들면서 반겨주는 것에 결코 맘이 편했을 것 같지 않다.
여유와 유머라고는 없는 개막식을 보며, “중국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있는 중국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외치는 것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졌다. 대체 무엇으로 하나가 되려고 하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글쎄, 그 전에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니, 하나가 되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윤재인|
프리랜서 전시기획자.
학교를 다니지 않는 17살 된 아이와 둘이 살고 있다.
생긴 대로 살아가도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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