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박두익(70), 유도의 계순희(29), 여자 마라톤의 정성옥(34)은 남쪽에도 잘 알려진 북한의 체육스타들이다. 그러나 체육인 최고의 훈장인 인민체육인을 넘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스타는 1999년 8월 29일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 뿐이다. 계순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북한 유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네 차례나 우승했지만 공화국 영웅보다 한 단계 아래인 ‘노력 영웅’에 그쳤다.
▷계순희와 달리 정성옥은 말을 잘했다. 우승 직후 그는 “결승 지점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어서 오라’고 불러주시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했다. 그해 공화국 창건기념일(9월 9일) 행사를 준비 중이던 북은 100만 명을 동원해 환영행사를 펼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성옥에게 ‘우리 조선의 훌륭한 딸입니다’라는 친필서한을 보냈다. 1년 전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을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던 북은 그의 우승을 “주체사상으로 쏘아 올린 제2의 인공위성”이라고 칭송했다. 그에겐 영웅 칭호와 함께 평양의 대형 아파트와 벤츠 승용차,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자리까지 주어졌다.
▷그제 베이징 올림픽 역도 여자 63kg급에서 우승한 박현숙(23)도 “위대한 장군님이 경기를 지켜본다는 생각에 마지막 순간 들어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정성옥의 ‘장군님 찬사’와 꼭 닮았다. 박현숙의 올림픽 금메달은 계순희 이후 12년 만이다. 그는 3년 전에 이미 ‘공훈 체육인’으로 선정됐다. 많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 공화국 창건 6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있어서 정성옥 못지않은 칭호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기 엄마가 된 정성옥은 몇 년 뒤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애인이 직접 채워 준 손목시계를 보며 힘을 내 우승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장군님’ 운운한 것은 의도적인 찬사였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좋은 일이 생기면 종교인들이 기도문을 외우듯이 북한 사람들도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무슨 기도처럼 한다는 것이다. 북을 초현실주의 사회나 사교(邪敎) 집단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