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대선후보와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6월 3일 미네소타 주 세이트폴의 엑셀에너지센터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승리를 선포하고 있다. 베일에 가려졌던 이들 부부의 1990년대 행적이 최근 언론의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美 일부 보수층 잇단 검증 나서
부인 미셸 인생경력도 속속 드러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해 비판적인 미국 내 일부 보수층에선 요즘 ‘보이지 않는 시간들(lost years)’이란 표현이 회자된다.
오바마 의원이 워싱턴 정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상원의원 선거 후보 시절인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부터다. 출생과 성장기, 초기 민권변호사 시절도 자서전을 통해 자세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3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반의 행적은 본격적으로 검증의 도마에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미국 내 일부 보수 언론들에선 이 시기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보도가 최근 빈번해지고 있다.
그리고 25일 민주당 전당대회 개막일 연사로 확정된 부인 미셸 오바마 씨의 인생 경력도 검증대에 올랐다.
▽30, 40대 초반의 오바마=네오콘(신보수주의자) 대변지로 불리는 위클리스탠더드는 1997∼2004년의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시절 오바마 의원이 하이드파크헤럴드란 지역 신문에 기고한 40편 이상의 칼럼과 의정활동 기록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이 주간지는 “오바마는 큰 정부 지향의 전형적인 분배우선주의자였으며 인종문제를 앞장서 의제화했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로스쿨 졸업 후 “흑인 민중 조직화를 이루겠다”며 시카고에 온 오바마는 1996년 시카고 남부에서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빈민층에 대한 주정부 지원을 앞장서 독려했다.
1999년 주 상공위원회에 소수계를 임명하라고 주지사에게 강력히 요구했고 진보 매체들은 그를 ‘변화의 선도자’라고 칭했다고 한다.
결국 탈(脫)이념, 탈인종, 비(非)당파성, 통합을 강조하는 오바마 의원의 최근 이미지와 과거 행적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보수파들의 주장이다.
▽미셸 오바마=시카고 시 상수도 시설 노동자와 카탈로그 상점 종업원 사이에 태어나 프린스턴대를 거쳐 하버드로스쿨을 졸업했다. 시카고의 법률회사에서 AT&T 등의 지적재산권을 대리하는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여름 인턴으로 온 오바마를 만났다.
시카고 시장 보좌관의 참모로 옮겼다가 남편의 권유로 청년들의 리더십 훈련을 시켜주는 시민단체를 이끌었다. 이어 시카고대 학생처를 거쳐 대학병원의 지역사회 담당 책임자로 옮겼다.
남편이 상원의원이 된 수개월 뒤 부원장으로 승진했고 연봉도 12만2000달러에서 31만6000달러로 뛰었다고 공영라디오방송(NPR)은 12일 보도했다.
월마트 납품업체의 이사를 겸임했으나 남편이 지난해 봄 “노조가 없는 곳에선 쇼핑을 하지 않겠다”고 월마트를 비판한 직후 이사직을 사임했다.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지난해 병원에 휴직계를 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