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인은 ‘그대’에게 가는 ‘하나의 길’을 노래해 왔다. 여럿인 경우에도 그 길은 특별한 몇 개의 길로 모아지곤 했다. 그러나 백무산은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을 노래한다. “길 밖 허공의 길”까지도 포함하는 백무산의 길들은 무수히 많으며, 어떤 지형에서도 열려 있다. 그의 마음이 세상 모든 곳을 향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을 열어두겠다”는 가없는 마음은 길이 없는 곳에도 길을 만든다. “나를 베어버리고 가는 길이어도 좋다”는 마음 앞에서 가파른 세상은 이미 도처가 길이다. 길과 길 아닌 것의 구별이 없는 곳에서는 “봄날 꽃길”을 편애하고, “여름날 타는 자갈길”과 “왁자한 저자거리 진흙길”을 기피할 이유 또한 사라진다. 문제는 ‘길’의 형태가 아니라, ‘그대에게 가는 길’의 행복한 가능성, 즉 ‘그대’이기 때문이다. 분별심 없는 불심(佛心)의 경지가 이러할 터이다.
그 모든 길을 준비하며 백무산이 마련해둔 것은 ‘꽃’과 ‘창검’과 ‘피 흘리는 무릎’이다. 아름다움, 무기, 혼신의 노력을 뜻하는 이 셋은 백무산이 걸어온 시와 삶의 길을 압축한다. 삶과 노동과 자연(생태)의 건강한 합일을 꿈꾸어 온 시인의 고투의 세월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간결한 문장 구조와 단호한 화법 또한 백무산의 정직하고 의지적인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백무산이 발심(發心)하듯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을 열어둔다면, 그중 어떤 길을 통해서든 “그대는 출렁이는 저 바다의 얼굴”로 마침내 ‘내’ 앞에 도래하지 않을 것인가. ‘꽃’과 ‘창검’과 ‘피 흘리는 무릎’을 ‘내’가 갖고 있기만 하다면!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