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늑대’ 그림=마거릿 섀넌, 베틀북
코흘리개 철부지 시절부터 뜨개질에 운명을 건 듯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쥐여주는 신기한 장난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뜨개질에만 매달려 살았던 이 아이는 자라서 소녀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녀의 관심과 열정은 오직 뜨개질 한 가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한밤중의 정전으로 방에 불이라도 꺼지게 되면 창문을 열고 달빛을 벗 삼아 뜨개질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나이 12세에 전국적인 뜨개질 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당당하게 장원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5세쯤에는 모든 세계 대회를 휩쓰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지구촌 어디를 뒤진다 하더라도 뜨개질에 있어서 15세 그녀의 솜씨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솜씨를 자랑하는 뜨개질 선수가 3시간 만에 성인용 스웨터 한 개를 짜낸다면, 달인의 칭호를 가진 소녀는 단 20분 만에 완성품을 내놓는 기록적인 기량을 갖게 되었습니다.
뜨개질을 하는 그녀의 손놀림을 바라보노라면 바람만 지나간다는 느낌이 있을 뿐 손과 바늘과 털실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현란한 무늬를 곁들여서 짜낸 스웨터는 한 땀도 실수가 없어 짜임새가 탄탄하고 무게 또한 가벼웠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녀가 짠 스웨터는 키 큰 사람이나 키 작은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이나 깡마른 사람이 입어도 모두 몸에 딱 맞는 신비하고 마력적인 기능을 가진 옷으로도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뜨개질의 신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칭호에 답하고자 했던 그녀는 세상을 더욱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당초 자신의 생명체조차도 털실로 구성하겠다는 꿈을 가졌었고, 이제 그것을 현실화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뜨개질의 신이라는 칭호를 가진 그녀로서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단 하룻밤 만에 지금까지 갖고 있던 자신의 피부와 살점과 뼈나 위장은 물론이고 심장과 허파를 포함한 몸 전체를 온전한 털실로 완성시키는 데 성공하고 말았습니다.
새벽이 되었고, 밤을 지새운 노심초사로 그녀는 목이 말랐습니다. 갈증을 해소하려면 털실로 구성된 자신의 몸을 해체시키고 본래의 생명체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갈증을 느꼈던 순간 그녀는 비로소 절망과 마주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녀가 뜨개질의 달인인 것만은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뜨개질한 것을 본래의 육체로 되돌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털실로 짜인 그녀의 시신을 땅에 묻으며 통곡했습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