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인 다니엘 켈만. 그는 1997년 ‘베어홀름의 상상’으로 데뷔한 후 오스트리아 총리상(2003년) 캉디드 문학상(2005) 등을 수상했다. 가우스와 훔볼트라는 두 천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세계를 재다’에서는 독일 문학의 엄숙주의를 거부한 경쾌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사진 제공 민음사 (c) Sven Paustian
◇ 세계를 재다/다니엘 켈만 지음·박계수 옮김/320쪽·1만 원·민음사
그는 독일인이라면 무릇 곧게 앉아야 한다는 정원사 아버지의 말에 순종적이고, 자신의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하며 말할 때마다 훌쩍이며 코를 훔치는 여덟 살 꼬마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벌로 1부터 100까지 모조리 다 더하라고 시킨 수학 선생에게 3분 만에 ‘5050’이라는 정답을 무심히 말하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그의 머릿속엔 만물이 수(數)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면 기도하는 대신 ‘소수’(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정수)를 센다.
여기 한 명이 더 있다. 형의 그늘에 묻혀 어린 시절을 보낸 귀족 청년. 청년의 형은 시인처럼 말하고 일곱 가지 언어를 완벽히 구사하며, 실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뛰어났다. 청년은 출셋길이 보장된 광산 감독관을 그만두고 모험과 탐험의 길로 나선다. 남아메리카를 탐험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등반을 하며 원주민 여자들의 머리에 있는 이의 개수를 세어 통계를 내고 밤에 내리는 서리의 무게를 측량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은 유명한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 천재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와 탐사 여행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그의 형은 언어학자인 카를 빌헬름 훔볼트이다)가 그들이다.
1828년 노년이 된 두 사람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자연과학자 회의에서 만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교차 서술을 통해 두 사람의 사뭇 다른 삶의 이력을 풀어낸다.
수학자는 사고력으로, 탐험가는 물리적 체험으로 세계를 측량할 수밖에 없다. 대인 접촉을 꺼리며 골방에 틀어 박혀 연구에 몰두하는 수학자와 벌거벗은 인디언과 어두운 동굴에 사는 새들을 몸으로 부대끼며 기록하는 탐험가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으니, 진리를 찾기 위해 고뇌한 ‘괴짜 천재들’이란 점이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그들의 기인에 가까운 면모들을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게 되살려 낸다. 가우스가 신혼 첫날 창밖에 뜬 달을 보며 항성 궤도 측정 오차 교정법이 떠올라 신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책상으로 가는 장면이나 재혼 후 못생긴 아내가 보기 싫어 토지 측량사가 되는 설정 등은 재밌다.
농담을 모를 만큼 언제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탐험에 임하는 훔볼트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 만큼 여성에 관해 무지했던 (혹은 무관심했던) 특성은 곳곳에서 폭소를 자아내는 상황을 연출한다. 독일에서 출간된 후 100만여 부 판매되며 인기를 끈 이 소설의 저자는 진지한 어투로 의뭉스럽게도 독자들을 끊임없이 웃게 만든다.
세계를 ‘재려는’ 그들의 집념은 궁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자신의 똑똑함을 너무 잘 인식하고 있는 가우스는 나이가 들수록 빈약한 육체에 감금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하고 뒤늦은 명예욕에 우울해한다. 훔볼트는 온갖 통계와 숫자로 가득 찬 재미없는 탐험기를 내고 빈털터리가 된 후 쉰이 넘은 나이에 다시 시베리아 원정을 감행한다.
두 사람의 모습은, 실컷 웃고 난 후 찡한 여운을 남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