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탄환’ 우사인 볼트가 남자 100m 경기에서 1위로 들어오고 있다. [베이징=올림픽공동취재단]
●남자 100m 우승자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의 100m 신기록 달성으로 사람들은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그가 정녕 그 칭호를 들으려면 18일 열릴 200m에서 우승해야 한다. 한 마디로 200m 우승자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것이다.
남자 200m 세계기록은 미국 마이클존슨이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세운 19초34. 볼트의 100m 기록을 단순히 2배(19.38초)로 늘려도 마이클존슨의 기록보다 0.04초 늦다. 그만큼 빠르기에서 마이클 존슨보다 늦다는 얘기다.
왜 200m 스프린터가 더 빠를까? 가속도 때문이다. 100m 스프린터는 처음 출발해서 가속도를 붙이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30m쯤 가야 최고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 자동차가 시동을 건 뒤 1단 기어에서 5단 기어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볼트가 만약 100m를 9초67 이내로 달린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릴 수 있다. 물론 200m 세계기록이 앞당겨지지 않아야 한다.
●육상 단거리선수와 장거리선수의 가장 적합한 체격은?
우사인 볼트는 키 195.58cm(6피트5인치)로 역대 우승자보다 10cm 정도 크다. 그만큼 롱 다리로 보폭을 넓게 디딜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키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키 큰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순발력이 떨어져 스타트가 늦다. 볼트도 이날 출발반응시간이 0.165초로 8명중 7위에 불과했다.
바람에 대한 저항력도 키가 크면 불리하다. 이날 경기장은 풍속=제로였다. 보통 초속 0.5~2m(2m이상은 비공인)의 바람이 부는 게 정상인데, 볼트로선 행운도 따랐다.
육상에선 단거리에서 장거리로 갈수록 키가 작아진다. 역대 올림픽 육상우승자를 보면, 단거리 남자선수 평균키가 183㎝에 68㎏이다. 반면 마라톤 남자 우승자는 169㎝에 56㎏(이봉주는 168㎝ 55㎏)정도이다. 나이는 남자 단거리가 23세 안팎, 남자 마라톤은 26세 내외였다.
수영의 8관왕 마이클 펠프스는 상체가 유난히 길다. 몸 전체가 언뜻 보면 돼지꼬리달린 어뢰 같다. 키 193cm 중 하체 길이가 81cm밖에 안된다. 183cm 박태환의 하체가 96cm인 것과 비교해 보면 기형에 가깝다. 펠프스는 그만큼 물에 잘 뜬다. 다리가 길면 그만큼 물에 가라앉기가 쉽다.
육상선수들은 그 반대다. 하체가 길어야 유리하다. 상체는 통자형으로 짧은 대신 가슴은 두터워야 하고, 다리는 길어야 유리하다. 가슴이 두터우면 심장과 허파 즉 엔진의 파워가 강하다. 다리가 길면 발폭이 넓다. 볼트의 하체길이도 상체에 비해 유난히 길어 보인다.
●왜 스프린터들은 골인 뒤 신발을 벗어 카메라에 비출까?
스폰서들을 위한 계산된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볼트는 청소년시절부터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 푸마의 막대한 후원을 받아왔다. 푸마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볼트의 이니셜을 딴 '우산(USAN) 슈즈'를 내놓았다. 트랙의 8레인을 형상화한 최고급 스파이크신발을 시장에 선보인 것이다. 신발바닥 중 과감하게 중간창을 없애버리고 밑창과 신발바닥을 바느질로 붙여버렸다.
결국 이번 100m의 스포츠화 경쟁에선 푸마가 이겼다. 나이키가 후원했던 미국의 가이는 결승 진출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푸마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볼트가 달리기 시작한 지 80m쯤 되었을 때 신발 끈이 풀렸다. 만약 신발 끈이 조금 일찍 풀어졌더라면 신기록은커녕 꼴찌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슈즈 싸움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육상은 47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지금까지는 단거리는 나이키가 우세하고 장거리에선 아식스가 앞서왔다. 푸마나 리복은 그 틈새를 장악했었다.
● 스타팅 블록은 언제부터 사용했나
스타팅블록은 단거리 선수가 출발할 때 딛고 출발하는 벽돌을 말한다. 스타팅블록은 1938년부년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올림픽에선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공식 사용했다. 그 전까지는 블록대신 땅을 파고 출발했다.
● 400m 릴레이가 100m 4번 뛴 기록보다 빠르다.
남자 400m 릴레이 세계기록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미국이 세운 37초40. 남자 100m 세계기록을 세운 볼트가 100m를 4번 뛸 경우보다 1초36 빠르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여자 400m 릴레이 세계기록은 85년 독일이 세운 41초37. 그리피스 조아너의 세계기록(10초49) 4배보다 0.59초 앞선다.
릴레이는 출발을 한번만 하면 되지만 100m는 4번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 여자기록이 남자보다 앞선 종목도 있다
원반던지기(DISCUSS THROW)는 육상 47개 종목에서 여자 기록이 남자보다 앞선 유일한 종목이다. 남자세계기록은 1986년 독일 위르겐 슐츠가 세운 74m08. 여자세계기록은 1988년 독일의 가브리엘 라인쉬가 작성한 76m80. 여자가 2m73 앞서있다.
그 이유는 원반크기가 다르기 때문. 여자용 원반은 남자용보다 지름이 2cm 작은 18cm. 무게도 여자용이 남자용의 절반인 1kg에 불과하다.
원반던지기는 고대올림픽에서부터 있었던 유서깊은 종목. 원반던지기 우승자가 모든 경기 우승자중 으뜸으로 여겨졌다.
●육상트랙경기는 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까?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파나디나코스 경기장) 육상 트랙경기는 시계방향으로 달렸다. 1906년 아테네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렸을 때도 시계방향으로 달렸다. 그런데 요즘 모든 육상 트랙 경기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달린다. 왜 그럴까?
1913년 국제육상연맹은 총회에서 '모든 트랙 경기의 달리는 방향은 왼쪽'으로 규정했다. 이 규정이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국제육상연맹이 굳이 시계반대 방향으로 규정한 것은 많은 선수들이 "고대 그리스올림픽에선 시계반대방향으로 달렸다"며 항의하거나 강한 반발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들은 '어쩐지 달리기에 어색하고 불편할뿐더러 기록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정말 그럴까?
전문가들은 "야생마나 경마장의 경주마 혹은 경주견 조차 본능적으로 늘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며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 좋은 예로 군인들이 사열할 때 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는 것을 든다. 구령도 "우로 봐!"는 있어도 "좌로 봐!"는 없다는 것. 관중들 입장에서도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처럼 '선수들의 움직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생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심장이 왼쪽에 있기 때문에 달릴 때 심장이 트랙 안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시게반대방향으로 돌아야 커브 바깥쪽에 있는 오른팔을 활발하게 흔들 수 있어 기록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똑같은 조건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시계방향으로 달리는 것보다 기록이 좋다는 것이다.
●단거리선수 근육과 마라톤 선수 근육은 다르다
단거리선수들은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우람한 반면에 마라톤선수들은 근육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왜 그럴까?
보통 사람의 근육은 속근(速筋)과 지근(遲筋)으로 나뉜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발휘 하는데 적합하고 지근은 지구력을 발휘할 때 좋다. 속근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 발달한다. 색깔은 하얀색. 장미란 같은 역도선수나 단거리선수의 근육이 울퉁불퉁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보기와는 달리 역도선수의 순발력이 태릉선수촌에서 1,2위를 다투는 것도 바로 이 속근 덕분이다.
반면 작고 섬세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지근은 마치 참나무처럼 겉으로 보기엔 없는 것 같지만 속이 꽉차 있다. 색깔은 붉은 색이다. 지근은 조깅 등 유산소운동을 해야 발달한다. 짐승들 중에서도 사자 호랑이 등 육식동물은 속근이 발달해 덩치가 우람하지만 사슴이나 얼룩말 등 초식동물은 지근이 발달해 날씬하다.
마라톤 감독들은 선수를 데려올 때 '사슴 같은 발목' '통자형의 두툼한 가슴' '작은 머리'를 가진 선수를 최고로 친다. 이런 선수들이 지근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황영조와 이봉주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머리가 작으면 그만큼 뛰는 데 부담이 덜 가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보통 속근이 발달하면 지근은 상대적으로 덜 발달하게 된다. 반대로 지근이 발달하면 속근이 약해진다. 그래서 육상에서는 속근과 지근이 고루 발달해야 하는 중거리(800m,1500m 등)종목이 가장 어렵다.
단거리 선수들은 더운 날씨를 좋아하고 마라톤 선수들은 쌀쌀한 날씨를 좋아한다. 이것도 속근과 지근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우면 우람한 근육은 떨림 즉 경련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지근은 더위에 약하다. 마라톤의 최적 기온이 섭씨 9도 안팎(습도 30~40%)인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약간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가 마라톤하기엔 좋다. 이 적정기온에서 1도가 높아질 때마다 자신의 개인최고기록보다 30초 이상씩 늦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보고서도 있다.
섭씨 38도를 오르내렸던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육상 단거리 남자 100,200m에서 도노반 베일리(9초84)와 마이클존슨(19초32)이 세계신기록을 낸 것을 비롯해 역도에서 14개의 세계신기록이 쏟아진 것은 속근이 좋아하는 더운 날씨 때문이다.
그러나 지근을 사용하는 남자마라톤은 당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가 2시간12분36초(이봉주 2시간12분39초로 2위)로 우승했다. 이 기록은 당시 세계 최고기록 딘 사모의 2시간6분50초(현재 게브르셀라시에 2시간4분26초)보다 무려 5분46초 느린 기록이다.
현대 스포츠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스피드'다. 어느 종목이든 이제 스피드가 없는 선수는 설 땅이 없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스피드가 없는 선수들로는 올림픽이나 세계무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스피드는 결코 훈련을 통해 나아지지 않는다. 대부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기술은 후천적으로 가르칠 수 있지만 스피드는 훈련으로 향상되는데 한계가 있다. 빠른 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보통사람보다 유난히 속근이 발달해 있다. 스포츠꿈나무를 조기에 발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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