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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땀의 눈물꽃…한국배드민턴의 오뚝이 역사

입력 | 2008-08-17 23:35:00

17일 베이징공과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 한국-인도네시아 전에서 이용대가 상대팀의 공격을 받아 넘기고 있다. 한국 이용대-이효정과 인도네시아 위디안토-릴리야나. 베이징=연합

92년 바르세로나 올림픽의 박주봉(왼쪽)-김문수 조[동아일보 자료사진]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딴 박주봉-나경민 혼합복식조.[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렇다. 배드민턴 쳐 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에 꼴깍…, 그만 침이 넘어간다. 밥 먹는 것도 잊는다. 무아지경. 셔틀콕은 새다. 날개가 있다. 새는 바람을 따라 난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잠시 내려앉을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고, 때로는 눈송이처럼 하늘하늘 춤을 춘다. 라켓(100g)은 그물이다. 그물은 수도 없이 새를 덮친다. 그러나 웬걸. 새는 빙그르르 잘도 빠져 나간다. 빠르다. '눈 깜짝할 새'(1초)에 92.1m를 날아간다.

한국 배드민턴은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다. 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에서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12년 만의 금메달. 세계랭킹 10위인 이용대-이효정(이상 삼성전기) 조가 세계랭킹 1위인 인도네시아의 노바 위디안토-낫시르 릴리야나 조에 2-0(21-11 21-17)으로 이겼다. 금 1개, 은 1개, 동 1개. 통산 5번의 올림픽에서 금 6개, 은 7개, 동메달 4개.

한국선수들은 배드민턴의 생명인 손목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선수만큼 부드럽지 못하다. 스텝도 부드럽지 못하다. 스피드나 순발력은 중국선수들에 떨어진다. 선수층도 비교할 숴 없을 정도로 옅다. 그런데도 체력과 끈질김, 투지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해왔다.

이용대는 오랜만에 나온 배드민턴 천재다. 이제 겨우 스물 살. 그는 비수다. 장검이 아니다. 머리가 좋다. 몸도 부드럽다. 앞으로 그는 한국배드민턴을 이끌어가야 한다. 90년대 박주봉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중심으로 한국배드민턴은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번 우승으로 이용대는 한 단계 올라섰다. 기술과 능력에 이제 경험까지 쌓은 것이다. 그는 우승 후 "남자복식에서 주변의 기대가 너무 커 부담이 많이 됐는데, 혼합복식에 거는 기대는 덜해 상대적으로 이 경기에 대한 부담은 적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 어쩌면 그것이 금메달보다 더 큰 소득인지도 모른다. 한번 우승해본 선수하고 못한 선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용대는 두뇌회전이 빨라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작전을 바꾼다. 그는 복싱선수의 숏 펀치처럼 힘 안들이고 짧게 툭툭 끊어 친다. 그의 스토로크는 예리한 단검이다. 소리 없이 상대 옆구리를 수시로 파고든다. 강스매시도 뛰어나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들다.

그는 전광석화 같이 빠른 드라이브를 속사포처럼 쏘아대기도 하고, 때론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드롭 샷을 하늘거린다. 그러다가 상대 몸쪽으로 섬광같은 푸시를 날린다. 그의 배드민턴은 변화무쌍하다. 수천 수만의 꽃송이가 일제히 피어났다가도 갑자기 일진광풍의 돌개바람이 자욱한 먼지를 날린다. 조훈현의 바둑처럼 재빠르고 경쾌하다. 제비처럼 날렵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효정은 네트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위협이다. 180cm가 넘는 그가 네트 앞에 서있으면 상대 여자선수는 셔틀콕이 자연히 뜰 수밖에 없다. 자칫 그에게 걸리면 그대로 실점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의식을 하다보면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여자선수가 네트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효정의 푸시나 스매싱을 염려한 탓이다. 부드러운 드롭샷도 일품이다. 네트에 하늘거리며 나비처럼 바짝 붙는 드롭샷은 남자선수도 받기에 까다롭다.

물론 이들에게 약점도 있다. 이용대는 헤어핀 등 네트플레이를 더 가다듬어야 한다. 이효정도 드라이브를 가다듬고 잔 실수를 줄여야 한다. 쉽게 무너지는 약점도 고쳐야 한다.

네트를 먼저 점령하는 자가 이긴다

배드민턴 라켓은 검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무리 빠른 검이라도 '눈 깜짝할 새'(셔틀콕)는 잡을 수 없다. 배드민턴 코트는 13.4×6.1m(복식). 가장 빠른 스매싱 공은 0.1초에 9.21m를 날아간다. 이론상으로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아가는 셔틀콕은 약 0.145초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리는 스매싱은 거의 없다. 대부분 코트 중후반에서 상대 코트 중간 앞쪽으로 날린다. 길어봐야 9.21m를 넘지 않는다. 0.1초 안에 받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반응시간은 0.1초가 한계다. 세계적인 남자 100m 선수들의 출발 반응시간도 잘 해야 0.13~0.16초다. 결국 반사 신경으로 쳐야 한다. 냄새로 새의 발자취를 좇아야 한다. 바람보다 빨리 움직여 바람보다 빨리 검을 휘둘러야 한다.

배드민턴 셔틀콕엔 날개가 있다. 머리는 코르크지만 몸통은 16개의 거위 깃털이다. 섬광처럼 날다가도 문득 홀연히 속도를 지운다. 벌새처럼 공중에 부동자세로 선다. 속도는 날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다가 뚝 떨어져 수직으로 낙하한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셔틀콕은 생물이다. 때론 총알처럼 직선으로, 때론 피그르르 맥없이 네트 앞에 떨어진다. 눈 밝은 검객은 결코 셔틀콕과 속도를 다투지 않는다. 새가 다니는 길목을 지킬 뿐이다. 그 길목은 네트다. 네트를 점령하면 아무리 빠른 새라도 단칼에 날아간다. 취모검(吹毛劍)이다. 누가 먼저 네트를 점령하는가. 새인가, 아니면 검객인가. 햐아, 인간과 새가 저 네트 앞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탐하고 있구나. 꼴깍 또 침이 넘어간다.

배드민턴은 눈(머리)-발-손목의 삼위일체 운동이다. 눈이 밝아야 상대의 빈 곳을 잘 볼 수 있다. 머리가 좋아야 길을 읽을 수 있다. 발이 빨라야 총알 같은 셔틀콕을 받아낼 수 있다. 손목의 힘이 강하고 부드러워야 셔틀콕이 바닥에 닿기 2~3cm 전에도 강하고 빠르게 상대 코트 후방으로 깊숙이 쳐 보낼 수 있다. 또한 아무리 강한 상대의 셔틀콕이라도 살짝 죽여(헤어 핀) 네트위에 걸쳐 넘길 수가 있다.

눈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상대 셔틀콕을 보고 움직이면 이미 늦는다.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수없이 분석하고 연구해야 상대 셔틀콕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많이 깨져봐야 '눈 푸른 납자(納子)'가 된다. 깨지고 또 깨져 밑바닥에 떨어져봐야 비로소 그 길이 보이는 것이다.

박주봉은 경기 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상대와 '가상 경기'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현 일본국가대표 감독)은 머리가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지능지수(IQ)가 아니라 두뇌 플레이가 빼어나다는 말이다. 그는 경기 전 이미 상대 셔틀콕의 길을 훤히 꿰뚫는다. 경기 전 최소 30분 이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상대와 숨 막히는 '가상 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상대가 후위에서 강한 스매시를 할 땐 짧게 네트 앞에 떨어뜨려주고 상대가 강하고 빠른 드라이브를 걸어올 땐 맞드라이브 보다는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상대의 리듬을 끊는 등 머리 속으로 이미 한판 승부를 끝내고 코트에 들어선다. 박주봉은 말한다. "경기 전 눈을 감고 머리 속으로 싸울 상대와 실제 경기하는 것처럼 온갖 수비와 공격을 해본다. 그러면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고 여기 저기 빈 곳이 보인다."

박주봉(1964~)은 96년 '배드민턴의 노벨상' 허버트 스칠 트로피를 받았다. 이 상은 1934년 국제배드민턴협회(IBF) 창립 이래 11명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상. 2001년엔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그의 짝인 김문수도 2002년에 오름). 92년 바르셀로나 남자복식(김문수) 금메달, 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나경민) 은메달,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 국제대회 71회 우승, 86아시아경기 3관왕…. 우승을 너무 밥 먹듯이 해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壅亮壙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