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천천히 하는 것이다. 고갯길이 나올 텐데 처음부터 오버(무리)하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말인 16일 한승수 국무총리와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국무위원, 대통령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청와대 뒤편 북악산 등산로를 오르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산행 뒤 청와대 상춘재 오찬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국정 운영에 매진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촛불이 광화문 일대를 뒤덮었던 6월 10일 밤에도 청와대 뒷산에 올랐다. 그는 사흘 뒤 기자회견에서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토로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이 고백했듯이 그는 ‘(531만 표라는 대선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된 뒤 마음이 급했으며, 역대 정권의 경험에 비춰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뤄 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가 촛불 정국이라는 ‘과속사고’를 당한 측면이 있다.
그와 참모들은 16일 2개월여 만에 청와대 뒷산을 다시 오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촛불 정국이 일단락된 만큼 심적으로는 홀가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선 안 된다.
이 대통령 일행이 산행에서 마주친 난코스와 고비 길은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각종 어려움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촛불이 꺼져가지만 경제난, 대통령 처사촌 언니와 여당 고문이 연루된 비리 사건, 개혁 대상인 공기업의 저항 등의 악재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국민에 대한 약속을 차분히 되돌아보면 좋겠다. 임기 초 6개월을 한숨 속에 보낸 만큼 미뤄둔 일에 대한 아쉬움이 크겠지만 그럴수록 서둘러선 안 된다. 부디 어려웠던 때의 교훈을 되새겨 초심을 잃지 않고 겸허히, 법과 원칙에 따라 국정을 이끌겠다는 각오를 다진다면 나라를 위해 다행이 아닐까.
이 대통령이 다음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성취감을 갖고 북악산에 오르길 기대한다.
박성원 정치부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