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성모병원 로비. 방문객과 직원 등 20여 명이 모여 한국과 중국의 남자 탁구 단체 준결승전을 관람했다.
"중국에 지지 마라" "OO들 응원도 시끄럽네" 결국 한국은 0:3으로 중국에 완패를 당했고 경기 내내 중국을 비하하는 고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이 편파 판정, 호루라기 응원 등 '사상 첫 종합 우승'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내 반중 감정이 거세어졌다.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야 할 올림픽이 오히려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내는 것.
14일 여자양궁 한국 박성현(25) 선수와 중국 장쥐안쥐안(張娟娟·27) 선수의 결승전. 박 선수가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TV 전파를 타고 흘렀다.
박 선수가 1점차로 패배하자 중국의 응원 매너를 비난하고 아쉬운 은메달에 울분을 토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중국과 남자 양궁 4강전을 치른 임동현(22) 선수도 "야유 섞인 중국 관중의 응원이 거슬렸지만 팀원들끼리 서로를 다독이며 경기에 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게시판에는 "베이징 올림픽 위원회가 금지 물품으로 결정한 호루라기가 어떻게 경기장내에 반입이 될 수 있나"면서 대한체육회가 나서서 조치를 취해 달라는 민원이 계속올라오고 있다.
중국과 맞붙는 경기마다 편파 판정, 부정 응원 논란이 일면서 19일 열리는 핸드볼 8강전을 앞두고 반중 여론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 포털사이트 등 각종 스포츠 게시판에는 "짜요(加油·힘내라) 소리 듣기 싫다" "보나마나 진 경기" "오심이 진짜 대표선수다"는 누리꾼들의 글들로 뒤덮였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주정희(52) 씨는 "88 서울올림픽을 비롯해 역대 어느 올림픽이나 개최국 텃세는 있었지만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심해 보인다"면서 "중국이 각국 손님에게 무례한 것 같다"고 거부감을 보였다.
이러한 반중감정이 재중 동포와 재한 중국인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17일 여성 포털 '마이클럽' 에는 한국과 중국 여자 양궁전에서 중국이 승리하자 조선족 입주 도우미들이 모여 자축했다며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면서 한국에서 돈을 버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를 쓰지 말자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도 했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외국의 노동자의 집 조호진 소장은 "실제 길을 걷던 조선족 동포가 이유 없이 '짱개'라며 얻어맞은 상담 사례도 있었다"면서 "냉대와 차별을 받고 있는 조선족들이 반중감정이 높아질 때마다 맹목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중적인 고통"이라고 말했다.
한주광 연세중화학생회장은 "자국 경기를 응원하게 되면 흥분도 하고 소리도 지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관람을 삼가는 편이다. 불필요하게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며 재한 중국인으로서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국가별 대항전인 올림픽 자체가 민족주의 감정을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특히 중국의 성장이 위협으로 느껴지자 이에 비례해 중국에 대한 반감도 커진 것이다"고 설명하면서 "반중감정이 재한 중국인에게 부당하게 투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