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공항영어 마스터하는 그날까지…
“자, 따라해 보세요. 도와드릴까요(May I help you)?”
“May I help you?”
“더 자신감 있게. 영어는 배짱 아닙니까?”
13일 오후 2시. 에어컨 하나 없는 김포공항경찰대 2층 회의실에서는 30여 명의 대원들이 더위도 잊은 채 영어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스포츠머리의 전경대원도,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 대원들도 강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한 마디 한 마디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영어 무서워 외국인 피하는 경찰
이들을 영어삼매경으로 빠뜨린 주인공은 무역업체를 경영하는 사업가 서기남(64) 씨. 그가 김포공항경찰대의 영어 강사가 된 것은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올해 1월 스페인 출장을 위해 인천공항에 갔다가 외국인이 뭘 묻자 쩔쩔매다 화장실로 몸을 피하는 경찰을 보게 됐지요.”
학업과 사업 때문에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에 거주해 영어에 자신 있던 서 씨가 나서서 외국인에게 호텔 위치와 지하철 타는 곳을 설명해 주고는 화장실에 가 보았다.
화장실에 있던 경찰은 서 씨에게 “대학은 나왔지만 영어는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출장을 가서도 서 씨의 머릿속에는 그의 말이 맴돌았다.
“공항은 우리나라의 얼굴과 같은 곳 아닙니까. 온 나라가 ‘영어, 영어’ 하는데 정작 영어가 필요한 공항경찰들이 간단한 대화도 못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서 씨는 고민 끝에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익힌 생활영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기로 결심했다.
출장에서 돌아와 ‘공항경찰대’를 찾으며 114에 건 통화는 김포공항경찰대로 연결됐고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 주고 싶다”는 서 씨의 제안에 이원형 김포공항경찰대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 나이-직급 떠나 영어삼매경에
3월부터 시작된 수업은 벌써 반년째로 접어들었다. 서 씨는 1주일에 한 번 1∼2시간씩 회화 위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많을 때는 50명까지 참여할 정도로 수업 열기가 뜨겁다.
서 씨는 “이민국 검문, 길 안내 등 실제로 공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옆 사람과 짝지어 대화도 시키고, 때로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배운 것을 말해보라고도 주문한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경찰대원들도 이젠 적극적이다.
전성민(21) 상경은 “공항에 근무하다 보면 영어를 해야 할 상황이 종종 생기는데 딱 그에 맞는 쉬운 영어라 재미있다”고 말했다.
한 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은 우수학생인 김한선(54) 보안과장은 “아는 말도 막상 외국인한테 하려면 잘 안 나오는데 회화와 제스처를 중심으로 배우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원형 경찰대장은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외국인이 하루 3000여 명에 이르는 데다 대테러 관련 검문이 철저해지면서 영어회화의 필요성이 커졌는데 이렇게 무료로 교육을 해 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서 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 씨는 쑥스러워하며 “재미있게 배우는 대원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수업하는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공항경찰대를 만드는 날까지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