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가 공실률 20%… 침체 현장을 가다
불경기에 쇼핑몰 ‘공급과잉’… 경매 낙찰가율 20%까지 떨어져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주변의 한 대형 쇼핑몰. 100여 평 규모의 5층 매장에는 교복을 입은 고객 20∼30여 명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점을 지키는 점원들이 오히려 고객들보다 많다.
이곳에서 수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유모(26) 사장은 “피서철 대목인 데도 장사가 거의 되지 않는다”며 “우리 층은 상인의 30%가 장사를 그만두려고 가게를 내놨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고객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 상인들과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던 서울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가 쇠퇴하고 있다.
발 빠른 상품 기획력과 생산공장, 도소매가 밀집하면서 누렸던 클러스터 특유의 활력은 사라지고 있는 데다 상가의 과잉 공급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상가만 4500여 개에 이르는 초대형 패션몰인 굿모닝시티가 개점을 앞두고 있어 주변 상인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굿모닝시티 개점하면 상황 더욱 악화”
현재 동대문 상권의 대형 쇼핑몰 내 상가는 약 1만1000개로 이 중 20%가 넘는 2300여 개의 점포가 공실(空室)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특히 올해 들어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상권 침체는 더욱 심각해졌다.
경매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들어 경매로 나온 동대문 상권 내의 상가(서울 중구와 동대문구 주소지)는 7월 말 현재 1204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917개)에 비해 31%늘었다. 평균 낙찰가율도 지난해 59.85%에서 41.51%로 떨어졌다. 일부는 20%대에 낙찰되기도 했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최근 경매에서 주택은 80∼120%, 토지는 70∼80%의 낙찰가율을 보이는 것에 비하면 상가의 낙찰가율은 매우 낮다”며 “이는 동대문 일대 주요 상가의 미래가치가 그만큼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 상인은 “설상가상으로 초대형 쇼핑몰인 굿모닝시티의 4500여 개의 점포가 문을 열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며 “수요는 줄어드는데 상가 신규 공급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 잘나가던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
서울 동대문 의류상권은 1990년대 아트프라자가 생기면서 남대문에 나뉘어 있던 상권이 동대문으로 모이면서 본격화된다. 특히 1990년대 말 밀리오레 등이 탄생하면서 기존의 도매에서 소매 형태로 시장의 성격 자체가 전환됐다.
온라인 쇼핑몰인 패비즌(fabizen)닷컴의 신용남 사장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저가제품에 대한 수요 급증과 자생적인 패션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자 동대문 패션상권은 전성기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제품 기획과 생산, 판매의 기능이 상권 내에 모여 있어서 소비자의 욕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 요인이었다. 외국 유명브랜드의 모방 제품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에서 생산에서 판매까지 이뤄질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송병렬 사무국장은 “동대문시장에서는 패션 완제품은 물론 원단에서 단추, 지퍼, 라벨, 포장용지까지 모두 구매가 가능해 하나의 완결된 패션 클러스터로 작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마케팅 센터 건립 등 체계적 지원 필요”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런 가치사슬은 서서히 끊어지기 시작했다.
인건비와 임대료 등의 상승으로 생산공장은 점차 시장 외곽이나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상가 과잉 공급으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디자인을 베끼거나 직접 중국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상인들도 늘어났다.
이우관(경제학) 한성대 교수는 “현재 동대문 패션상권 내 상품의 60∼70%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유럽의 명품에는 품질에서 밀리고 중국산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에 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시는 상권의 활성화를 위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디자인센터도 지을 예정이다.
하지만 상인들과 전문가들은 동대문이 세계적인 패션 클러스터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소상인들의 생산 네트워크가 연결될 수 있도록 마케팅과 연구개발(R&D)센터 건립, 체계적인 금융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오후 5시에 나와서 새벽까지 일하는 대다수 상인들이 아침에 출근해 오후 6시면 퇴근하는 지원센터의 공무원과 만날 수가 있겠느냐”며 “현실적인 지원대책이 없으면 대구의 안경산업이나 부산의 신발산업처럼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진석(한국외국어대 법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