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이상화(사진) 선생의 옛집과 유품 등이 원래 모습 그대로 후대까지 잘 보존되길 바랍니다.”
17일 대구 중구 계산2가 이상화(李相和·1901∼1943) 시인의 고택을 찾은 시민 김정숙(47·주부) 씨의 말이다.
시인의 옛집이 대구의 새 문화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집은 대지 205m², 건축면적 64.5m² 규모의 목조 단층 가옥으로 2년여 간의 복원 공사 및 전시자료 수집 기간을 거쳐 12일 문을 열었다.
개관 당일 500여 명의 시민이 다녀갔으며 이후 하루 평균 150∼250명의 시민이 꾸준히 찾고 있다.
이상화 시인이 작고하기 전까지 말년을 보내며 창작 활동을 했던 이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그가 당시 제자와 친구를 맞이해 담소를 나누었던 사랑채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생전에 그가 즐겨 읽던 고서와 서적 등 100여 권이 비치돼 있으며 그의 행적을 담은 연보와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과 서가 등이 갖춰져 있다.
안채의 안방에는 장롱과 그의 친필 서간문, 소품, 가족사진 등이 있으며 마당에는 석류나무 2그루와 감나무 1그루가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상황에 괴로워하던 그는 집 마당의 감나무 아래에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마당 한쪽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그가 지은 시 2편을 새긴 시비 2개가 나란히 서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정호(40·회사원) 씨는 “집안이 단아하게 정리돼 있어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 김학송(54·교사) 씨는 “고택이 잘 복원돼 있지만 자료와 유품 등을 소개하는 책자가 비치돼 있지 않아 관람을 하는 데 다소 불편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상화기념사업회 윤장근(73) 회장은 “이상화 선생이 남긴 유품과 관련 자료 등을 꾸준히 수집해 이 고택이 한국문학 자료관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시 낭송회와 사진전, 문학기행도 열어 향토 문학발전의 요람으로 꾸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택은 1999년 도심 개발 과정에서 헐릴 위기에 놓이자 보존을 위한 범시민운동이 전개되던 중 고택 부근에서 주상복합아파트 건립 사업을 추진한 군인공제회가 이곳을 사들여 2005년 대구시에 기부했다.
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