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거는 슬로건은 ‘변화와 혁신’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 없이 혁신을 표방했다. 그러나 출범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로 촉발된 혼란의 여파로 새 정부의 혁신은 아직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혁신이란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환경 속에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과업이므로 당위성에 대해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혁신의 세부사항에 들어가면 적지 않은 이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감과 저항감을 드러낸다. 혁신은 관행과 특권을 포기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혼동 속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혁신의 어려움이 있다.
노무현 정부를 돌이켜보자. 지난 5년간 추진했던 정부 혁신은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않는 소프트웨어적인 혁신이었다. 일하는 방식, 조직문화, 윤리경영이 혁신의 주된 메뉴였던 반면 조직의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라든지 조직 구조의 변화와 슬림화, 혹은 필요 없는 규제를 과감하게 제거하는 등의 구조적 혁신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혁신활동은 조직 효율 내지 조직 구조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혁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증거를 든다면,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자체 평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직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또 혁신 분야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이 정작 경영성과는 극히 부진한 상반되는 결과를 드러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혁신은 실질적인 산출과 성과보다는 다소 선전적인 수사와 과정의 국면에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혁신의 단계에서 표출되기 쉬운 구성원의 거부감과 큰 저항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혁신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국민과 기업에는 진정한 가치의 창출보다는 규제의 강화와 세금 부담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결과를 빚어냈다.
규제 개혁, 실용과 성장을 비전으로 내건 새 정부는 당연히 그 짐을 덜어내는 작업을 혁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혁신 과정에서 겪게 될 저항과 반대는 소프트웨어적 국면에서 자주 언급되는 ‘혁신 피로감’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조직적 저항이 따를 수 있다. 여기에 새 정부 혁신이 가진 진퇴양난의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혁신과 변화에 대해 제시한 주장을 유용하게 되새겨볼 수 있다. 드러커는 모든 기획의 첫 단계는 모든 활동, 모든 제품, 모든 과정 또는 시장에 대해서 이렇게 물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이 일이 없었다면, 그래도 지금 이 일에 뛰어들 것인가?”
만약 대답이 노(No)라면 그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혁신의 출발점은 방만한 자원의 배분과 낭비를 제거하는 일, 즉 ‘체계적인 포기’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늘 강조했다. 조직이든 국가든 한정된 자원을 생산성 있게 정비하는 일을 도외시한 혁신은 언제나 ‘말뿐인 혁신’이 되고 효용성이 고갈된 일과 규제를 다 끌어안는 혁신이 되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과 효율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모색하려는 새 정부의 혁신은 우리의 재도약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치로 내거는 혁신은 구조조정을 수반한 실질적인 혁신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난관을 남겨두고 있다.
변화는 늘 위험을 무릅쓰기 마련이다. 위험을 선택하길 거부하는 자에게 기회는 없다. 이 점을 국민에게 겸손하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설득하는 전략과, 혁신에 수반되는 당사자의 희생과 헌신을 정부가 얼마만큼 끌어낼 수 있는지에 따라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문근찬 한국싸이버대 교수 전략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