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서 8년째 활약 발레리노 김용걸
‘발레의 전설’ 무하메도프에게 길을 묻다
국립발레단의 하반기 순회공연 ‘지젤’은 특별하다. 세계적인 발레리노 출신인 이레크 무하메도프(48) 그리스국립오페라발레단 감독이 트레이너를 맡은 것.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리는 무하메도프의 지도에 연습실은 긴장이 감돈다.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유일한 동양인 솔리스트로 8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용걸(35) 씨도 그의 지도를 받고 “놀랍도록 소중한 체험”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일시 귀국한 김 씨는 23일 부산에서 열리는 ‘지젤’ 무대에 선다. 19일 두 사람을 만나 공연의 관전 포인트와 발레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무하메도프=2000년 서울에서 열린 갈라 공연에 참석한 뒤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그동안 한국 무용수들의 테크닉이 발전했다. 특히 용걸 씨는 세계적인 발레단에 소속돼서인지 자유로우면서도 원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김용걸=그동안 무하메도프 선생님의 공연 DVD를 많이 봤다. ‘스파르타쿠스’, ‘이반 대제’, ‘라바야데르’…. 내게는 ‘발레의 전설’이었다. 그 위대한 발레리노가 의외로 소탈하고 편안해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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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에서 시골처녀 지젤은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약혼자가 있음을 알고 배신감에 미쳐 죽어버린다. 무용수로서, 남자로서 둘은 작품 속 남녀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하메도프=우리는 모두 살아간다는 게임을 한다. 그런데 이 게임 중에 알브레히트가 지젤이라는, 삶의 기반이 뒤흔들리는 ‘사고’를 만난다. 인생이 뒤바뀌는 사랑이라니! 그래서 ‘지젤’은 낭만 발레다.
▽김=이번에 연습을 하면서 알브레히트에게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는 걸 알게 됐다. 죽은 지젤을 껴안고 통곡할 때는 죄스러운 마음, 그러나 죽은 지젤의 어머니를 보고 자리를 피할 때는 비겁하고 차갑다는 걸. 결국 인간에게 두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다.
▽무하메도프=지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순결한 여성이다. 남성에게는 완벽한 로망이다. 알브레히트는 지젤의 ‘순수한 게임’에 동참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순수함은 오히려 희생물이 되기 쉽겠지.
▽김=지젤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알브레히트도…. 나와는 다른 사람을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남자들 처지에선 ‘바람을 피우다가도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겠지만 나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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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공연은 여성무용수가 빛나는 무대다. 그런 발레를 업(業)으로 삼는 남성무용수로서 탄탄한 철학이 있을 터. ‘남성무용수로 춤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하메도프=주인공은 지젤이지만 알브레히트가 없었다면 지젤이 죽을 일이 있었겠나. 그것이 남성무용수의 역할이다. 물론 대부분의 발레에서 빛나는 것은 발레리나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제목부터 여성을 가리키지 않나. 그렇지만 발레리나가 돋보이는 것은 남성무용수에게 달려 있다.
▽김=남성무용수가 여성보다 앞에 나서려고 할 때 균형이 깨진다. 남성무용수가 박수를 받는 것은 여성무용수를 빛내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때다.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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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트레이닝에서 무하메도프가 강조하고 김용걸 씨가 뜻 깊게 배운 것은 뭘까.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연기”라고 말했다.
▽무하메도프=발레는 움직임의 조합이 아니라 신체 언어다. 그저 뛰어오르는 게 아니라 왜 이때 뛰어오르는 건지, 왜 도는 건지 관객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걸 표현하려면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예술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김=무하메도프 선생님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무용수에 멈추지 않고,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관객을 감동시키는 연기로 유명하다. 관객과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훈련에서 절실하게 배웠다.
국립발레단 ‘지젤’ 공연은 23, 24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서울 열린극장창동(29, 30일), 강원 태백시와 경북 구미시, 경기 오산과 용인시, 대구 등에서 순회공연을 한다. 23일 윤혜진 김용걸, 24일 김주원 이원철 씨가 출연한다. 3만∼10만 원. 02-587-6181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