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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com]사진 찍는 헤어드레서 김세호 씨

입력 | 2008-08-22 03:01:00


“영화배우 전도연

나만큼 많이 찍은 사람 없죠”

가위와 사진기.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유명 헤어살롱 ‘앳폼 조성아’의 김세호(35) 크리에이티브팀 이사를 표현하는 중요한 두 오브제다.

이 헤어살롱의 트렌드 작업을 총괄하는 김 이사는 전도연, 고소영, 권상우, 송윤아 등 내로라하는 국내 연예인들의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스타 헤어드레서’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시끌벅적한 뷰티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과묵하고 신중한 태도에 놀랐다. 숱한 패션잡지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화보들을 찍은 포토그래퍼가 바로 그였다는 사실을 알고 한번 더 놀랐다.

직업은 헤어드레서지만 전문 사진작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많은 패션 미디어의 ‘러브 콜’을 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마침 그는 무더운 8월 둘째 주 여름휴가 기간 ‘아주 특별한 촬영여행’을 다녀왔다.

○거울과 카메라 뷰파인더란 두 개의 프레임

그는 2005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투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개인 사진전을 열었다. 유명 인사들의 방문이 넘쳐나 아마추어 포토그래퍼의 전시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였다.

‘From the heart to the heart’란 이름의 이 전시에서 김 씨는 필리핀 보라카이 섬에서 만난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 수많은 유명 연예인의 자연스러운 인물사진을 담아내며 이들 사진에 대한 감상도 짧은 수필처럼 곁들였다.

‘마을 시냇가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던 아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유난히 큰 눈동자 안에 반짝이는 눈망울 속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신기했다. 나는 아이의 사진을 찍으며 한편으로 그 아이 속의 나를 찍고 있었다.’

‘2002년 비오는 날 전도연 씨를 처음 찍었던 날은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큰 획이다. 전 씨를 찍는 그 순간부터 “아, 배우란 이런 것이구나” 알았다. 이후 꾸준히 그녀를 찍는데,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나만큼 많이 찍은 사람이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헤어드레서와 포토그래퍼. 언뜻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곰곰 생각하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조합이다. 김 씨의 말대로 “헤어드레서가 거울이라는 프레임 안에 비친 고객 머리의 형태와 균형을 잡는다면, 포토그래퍼는 카메라 뷰파인더란 프레임 안에 모델을 담는 사람” 아니던가. 더욱이 유명 스타들이 분장을 마치기 전 무장해제된 상태로 그의 손에 머리를 맡기니 가장 자연스럽고 진솔한 이미지를 담을 수 있지 않던가.

○‘아버지와 아들’ 주제 내년 초 전시회 계획

그가 최근 다녀온 촬영여행은 내년 초로 예정된 두 번째 전시를 위한 것이었다. 첫 사진전에서 모은 수익금 500만 원을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에 냈던 그는 두 번째 전시회 수익금 전액도 결식아동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준비 중인 전시의 가제(假題)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외아들로 2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현재 5세 아들을 둔 그는 “아버지가 돼 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알겠기에” 아버지와 아들 모델들을 부지런히 렌즈에 담는다고 했다. 오랫동안 다녔던 일식집과 병원 등에서 ‘같은 길을 걷는’ 아버지와 아들들을 찍다가 이번 여행에선 인터넷을 부지런히 검색해 전통 가업(家業)을 잇는 부자(父子)지간을 찾아 나섰다.

충남 홍성군에서 옹기를 만드는 방춘옹 부자, 충북 청주시에서 엿을 만드는 윤팔도 부자, 충남 보령시에선 벼루를 만드는 김진한 부자, 대구에선 붓을 만드는 이인훈 부자…. 서울로 돌아와선 축구화 수선을 하는 김철 부자와 활을 만드는 권무석 부자를 찍었다.

처음 만나는 포토그래퍼가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아버지와 아들들은 처음엔 긴장했다고 한다. 더구나 아들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게 못내 쑥스러운 ‘전통적인 한국의 아버지’들이 아닌가.

축구화 수선을 하는 김철 씨는 본드가 많이 묻어 오랜 연륜이 드러나는 앞치마를 둘째 아들에게 주고, 자신은 비교적 깨끗한 아들의 앞치마를 두르고 카메라 앞에 섰다. 김 씨는 바로 이런 모습이 말 없는 아버지의 사랑 아니겠느냐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삶

주 6일 헤어살롱에서 일하는 그는 쉬는 일요일, 주중 점심시간 등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넉넉한 집안의 아들이 사진이나 헤어 스타일링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극구 말렸던 그의 아버지…. 정작 꼬마 적 김 씨에게 당시에는 귀한 캐논 카메라를 쥐여주며 놀게 했던 아버지는 병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이 자신의 머리를 잘라줬을 때 어쩌면 아들이 지금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영국 런던 비달사순 등에서 유학한 김 씨는 영국 헤어드레서들이 스타일도 만들고 사진도 직접 찍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에 매진하게 됐다고 한다.

헤어드레서 본업과 취미인 사진을 7 대 3 비율로 유지하고 있는 그는 10년 후인 40대 중반에는 예약 손님만 받으며 이 비율을 거꾸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두 일 모두 사람들과 교감을 이루고 사람을 돋보이게 하지만, 특히 사진은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있거든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