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는 아이들이 그린 봄 여름 가을 겨울/이오덕 엮음/336쪽·5만 원·보리
아동문학가 이오덕 5주기 시화집… 1960년대 시골제자들의 때묻지 않은 그림 담아
“그림은 이렇게 그려라, 저런 색을 칠해라 하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마음대로 그릴 수 있게 놓아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면서 즐길 수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못 하는 것은 모두 어렸을 때 비참한 흉내 내기 그림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아이들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중에서)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의 5주기를 맞아 고인이 가르친 아이들의 그림과 시를 묶은 화집이 출간됐다. 글쓰기 교육서나 동시집, 산문집 등은 여럿 출간됐지만 그림 그리기 교육과 관련된 성과가 나온 것은 처음. 아이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살려주고 정성을 다해 자유롭게 그리도록 한 그의 교육 철학이 화집 속 그림에 담겨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주제에 따라 실린 338점의 그림은 1960년대 고인이 경북 상주 청리초등학교 등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그린 것.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와 산문, 고인의 미발표 유고, 생전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이호철·보리)에 썼던 추천사 등이 함께 실렸다.
아이들의 그림에선 서툴고 거칠지만 자연과 생동하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선연하다. ‘아이들은 결코 추상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그림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삶을 나타낸다’는 고인의 말처럼 샛노란 산등성이와 연둣빛 논에 파종하는 모습, 보리타작을 담아낸 그림에선 일하는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이 녹아 있다.
‘아이들의 창조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이들 저마다 주인이 돼 살아가게 하고 그리게 하고 쓰게 하고 노래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의 지론도 엿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스케치도 인상적이지만 연한 파스텔 계통의 빛으로 흐드러진 꽃밭, 가지의 빨간 대추열매와 잎사귀 등 색감의 조화는 아름답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그림 위에 ‘소’ ‘눈 내리는 것’이라고 써 놓은 것이나 별다른 밑그림 없이 색칠만 해 둔 그림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풍경화, 인물화, 달력에 넣을 그림, 시나 산문에 맞는 그림,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그림이 실렸으며 원형을 살리기 위해 큰 판형(26cm×24.8cm)을 정했다.
책 출간과 함께 5주기를 맞아 24일 오전 10시 마포구 서교동 태복빌딩에서 한국글쓰기연구회(02-324-0152) 주관으로 ‘제3회 이오덕 공부마당’이 열린다. 한국글쓰기연구회는 고인이 1983년 창립했으며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동화작가 윤태규 씨의 강연과 노래마당도 열린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