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르핀이 돌고 있다. 청와대 들어온 이후 최고로 신나는 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한나라당 사무처 직원 270여 명을 초청해 베푼 만찬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다. 이날 저녁 행사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호스트인 대통령이 신바람을 내자 손님인 한나라당 사무처 직원들은 건배 제의를 하거나 분위기를 돋우는 삼행시를 지어 가며 맞장구를 쳤다.
▷엔도르핀(endorphin)은 뇌에서 생성되는 천연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1975년 생화학자인 한스 코스터리츠 영국 애버딘대 교수가 처음 발견했다. 그는 이 물질이 모르핀보다 200배나 진통 효과가 강한 점에 착안해 ‘체내의 모르핀’이라는 의미로 엔도르핀으로 이름을 붙였다. 국내에서는 1988년 이상구 박사가 ‘엔도르핀 이론’을 들고 나와 건강 열풍을 일으키면서 ‘행복 물질’로 인식되고 있다.
▷엔도르핀은 자동적으로 분비되지 않는다. 낙천적인 성격의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과 몸이 행복하지 않으면 엔도르핀을 만들어낼 수 없다. 기쁘고 즐거우면 엔도르핀이 생성되지만 우울하고 기분이 나쁘면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웃음은 엔도르핀 생성 촉진제로 알려져 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섹스를 할 때도 엔도르핀이 만들어진다. 독일 뮌헨공대 헤닝 뵈커 교수팀은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엔도르핀 분비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로 취임 6개월을 맞았지만 벌써 두 차례나 대(對)국민 사과를 했다.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가 상승세로 돌아섰다고는 해도 아직 안정기조는 아니다. 객관적으로는 엔도르핀이 만들어질 분위기가 아니다. 지난 6개월 국민의 살림살이 형편을 두루 살펴보고 엔도르핀 얘기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 국정은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민생은 참으로 고단하다. 야구 경기와 올림픽 메달 집계가 잠시 시름을 잊게 했지만, 일자리를 찾는 실업자들이 널려 있고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한숨이다. 물가가 올라 추석을 쇨 일도 걱정이다. 이 대통령은 엔도르핀이 도는 모양이지만 국민은 엔도르핀 부족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