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3일 쿠바를 꺾고 베이징 올림픽 우승을 확정 지은 한국야구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야구 대표팀 주장 진갑용(왼쪽)과 4번 타자 이승엽(오른쪽)이 24일 중국 베이징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 때 김경문 감독에게 자신이 받은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역전승 4회-1점차 승리 5회… 매경기마다 극적 드라마
1992년 女핸드볼 이후 16년만에 단체 구기종목 金위업
金감독 “선수들 팀워크 덕분… 야구 그만둬도 여한없다”
■ 한국야구 쿠바 꺾고 ‘끝내기 金’
그들은 멋졌다. 한국 야구는 최고였다. 24명의 선수가 하나가 돼 따낸 금메달. 감독은 선수를 믿었고 그 믿음은 9연승으로 이어졌다. 미국 일본 쿠바는 한국에 고개를 숙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이후 16년 만의 단체 구기종목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강에 오른 한국 야구. 국가별 금메달로는 1개뿐이지만 선수들은 2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야구의 금메달에 국민은 열광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 김경문 감독 믿음의 야구 결실
한국의 9연승은 매 경기가 드라마였다. 처절한 명승부였다. 역전승이 네 번, 1점 차 승부가 다섯 번이나 됐다.
23일 쿠바와의 결승전도 그랬다.
한국은 1회초 이승엽(요미우리)의 2점 홈런과 7회초 이용규(KIA)의 1타점 2루타로 9회초까지 3-2로 앞섰다.
쿠바의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엑토르 올리베라가 왼쪽 안타를 날린 뒤 프레데리치 세페다와 알렉세이 벨이 연속 볼넷으로 출루해 1사 만루가 됐다.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호투하던 류현진(한화)은 흔들렸다.
하지만 위기에 등판한 정대현(SK)은 승부사였다. 시속 110km대의 낮은 스트라이크를 연이어 꽂아 넣은 뒤 세 번째 공을 바깥쪽 낮은 볼로 승부를 걸었다.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친 타구는 유격수 박진만(삼성)과 2루수 고영민(두산)을 거쳐 1루수 이승엽에게 전해졌다. 6-4-3(유격수-2루-1루) 병살타. 한국의 극적인 3-2 승리였다. 김 감독의 ‘감(感)의 야구’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를 믿었다. 왼손 투수가 나와도 왼손 타자를 상위 타순에 줄줄이 배치했다. 타자가 진루하면 번트를 대고 왼손 투수가 나오면 오른손 타자를 내세우는 ‘스몰 볼’은 자제했다. 선수에 대한 믿음은 일본에 예선에서 5-3, 준결승에서 6-2로 역전승한 원동력이 됐다.
한국의 첫 올림픽 우승 직후 김 감독은 “원래 동메달이 목표였는데 선수들 팀워크가 좋았다. 당장 야구를 그만둬도 여한이 없다”며 기뻐했다.
○ 이승엽의 살신성인
이승엽의 올림픽 9경기 타율은 0.167. 하지만 그는 해결사였다. 위기에 강했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친 8회 역전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친 선제 2점 홈런이 모두 승부를 결정지은 결승 홈런이었다.
왼손 엄지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며 타격 밸런스가 최악이었음에도 승부처에서 큰 거 한 방으로 한국을 구했다.
이승엽은 우승 직후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일본전 홈런은 공이 방망이에 맞아줬고 쿠바전 홈런도 정확히 맞은 공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승엽은 27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다시 2군 생활이 예정돼 있다. 언제 1군에 복귀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의연했다. “이제는 운이 아니라 실력을 갖춰 (1군에) 돌아오겠다”며….
○ 24명이 하나 돼 이룬 금메달
행여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어떡할까 걱정하며 누구보다 마음을 졸인 선수도 있다. 대표 자격 논란 속에 ‘김경문호’에 합류한 이대호(롯데)가 그랬을 법하다.
이대호는 동갑내기 김태균(한화)에 비해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다. 베이징에 오기 직전까지 극심한 타격 부진에 허덕였다. 많은 야구팬이 이대호 대신 홈런, 타점 선두인 김태균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훈(두산)은 윤석민(KIA)으로 교체됐지만 이대호는 최종 엔트리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팀 내 최다인 홈런 3개를 쏘아 올리며 한국 거포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용규의 맹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용규는 일본전 승리가 확정된 순간 그라운드에 엎드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용규는 “야구를 시작한 뒤 처음 눈물을 흘렸다. 예선부터 쉽게 이긴 경기가 없었고 일본과의 준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기고 보니 다리에 힘이 확 빠지며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막내인 김현수도 2루타 2개를 포함해 타율 0.370, 3득점, 4타점으로 제 몫을 다했다. 16일 일본과의 예선에서는 대타로 나서 결승타를 쳐내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시상대 맨 위에 오르며 야구 역사를 새로 쓴 한국 대표팀. 그들은 너무 멋졌다.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영상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 영상취재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영상취재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