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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재호]거대 중국과 더불어 사는 법

입력 | 2008-08-27 02:46:00


세계인의 축전, 베이징 올림픽 17일간의 장정이 화려한 막을 내렸다. 13억 중국인이 꿔왔던 ‘백 년의 꿈’이 이뤄진 모습을 보고 갖게 된 느낌은 올림픽 내내 화면에 비쳤던 ‘하나의 세계, 같은 꿈(同一個世界, 同一個夢想)’과 같은 슬로건보다는 ‘한국이 얼마나 엄청난 힘과 잠재력을 가진 거인 옆에서 살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미 ‘제국’을 경영해 본 중국에 부국강병이란 당위의 목표이자 내재된 본연의 ‘질서’이기에 머지않아 다가올 ‘중국의 시대’를 살아야 할 한국이 감당해야 할 준비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16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날이었고 다음 날 바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비롯해 양국 간 협력 강화와 통상 증진을 위한 공감대를 다지는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정상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패한 정상회담은 거의 없다’는 외교가의 상식처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상 간의 만남이 남긴 결과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와 그것들이 오랜 기간 쌓이면서 그려 가는 양국 관계의 궤적이라 하겠다. 따라서 규모와 속도의 증가에 취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16년과는 달리 이제 가끔은 진솔하게 양국 관계를 뒤돌아보며 반추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수교 이후 한중 간 교류는 상론이 불필요할 정도로 부단한 확대와 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양적 지표만으로는 기술키 어려운 것이 또한 한중 관계라 하겠다. 이미 한중 관계의 초석이랄 수 있는 경제 관계에서 적지 않은 변화의 단초가 나타나고 있다. 상호의존은 심화되고 있지만 상대적 의존도는 점차 크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더욱 우려되는 것은 양국 국민 사이에 서로에 대한 복합적인 정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인식도 있지만 반(反)중국 정서와 혐한류(嫌韓流)에 가까운 부정적 인식 또한 그 저변을 늘려가고 있다. 이에 더해 마늘분쟁, 김치파동, 고구려사 논쟁, 이어도 문제와 같은 양국 간 분쟁의 영역이 날로 확대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올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시 중국과의 관계가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에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戰略合作화伴關係)’로 ‘격상’됐다. 5년마다,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한중 관계를 새로이 규정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왕에 합의된 결정이기에 그것이 단순한 슬로건에만 그치지 않고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격상’이 이뤄지도록 내용 채우기에 있어서 앞으로 매우 치밀한 판단과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양자적 관계와 경제적 협력을 넘어서는 동반자 관계를 상정하는 한중 간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왜 중국이 지금까지 인도와 파키스탄의 두 나라와만 맺은 이 관계의 유형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겠다. 한중 군사교류 확대에 대한 합의가 한국의 장기적인 전략 틀 안에서 어떤 순기능과 부작용을 함께 갖게 될지에 대해서도 세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의 한국 외교에 있어서 현학적인 거대담론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쇠고기 사태’가 남긴 진정한 교훈이 하나 있다면 바로 ‘악마는 세부사항에서 드러난다(The devil's in the details)’는 것이 아닐까? 외교 당국의 전문적인 식견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치밀한 사고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