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하필 지금… 北 선언 배경과 의도는
올림픽 끝나고 후진타오 한국 떠난 직후 발표
“판 깨기보다 요구조건 관철 위한 벼랑끝 전술”
“차기 美행정부 구성때까지 시간끌기” 해석도
북한이 베이징 올림픽 폐막 다음 날 방한했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방한 일정을 마친 직후를 택한 것은 중국을 배려하겠다는 계산이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시작일을 택한 점은 미 행정부에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지키라는 요구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전문가들은 북측의 이 같은 행동이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고 보면서도 북측 조치의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세 갈래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사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 국면에 이를 때마다 무력시위나 합의사항 불이행 협박 등을 통해 미국 등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려 했다. 북한은 올 4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협상을 갖기 전인 3월 28일 서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시각에 따르면 북핵 검증체계 마련과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문제를 놓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 협상이 타결될 경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퇴임 전이라도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가 “북한이 원하는 것은 판을 깨는 것이 아니라 검증체계 수립에서 유리한 조건을 관철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다.
▽전략적 실패에 따른 후퇴=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보는 시각은 북한이 지난해 2·13합의 이후 견지해 온 북-미 관계 개선 전략의 실패를 인식하고 부시 행정부와의 핵 협상을 끝내려는 수순이라는 것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6개월 이상 핵 신고서 제출을 지연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대선 정국이 시작됐고 미국 내부의 정치 상황 때문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어려워졌다”며 “북한이 자신들이 저지른 전략적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 마지막 수단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부시 대통령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외교적 성과인 ‘북핵 진전’은 물거품이 되고 미국의 양보가 없는 한 연내 6자회담의 진전은 어려울 수도 있다.
▽핵보유국 지위 확보 위한 포석=북한의 궁극적 목적은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며 이번 조치 역시 그 일환에서 면밀하게 계획된 조치라는 시각이 있다.
손광주 데일리NK 편집장은 “김정일의 궁극적 목표는 핵무기를 보유한 조건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이날 조치는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차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시화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수순”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1998∼2000년에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살리지 못했다. 북한은 애초 생존을 위한 ‘시간 끌기’를 하는 것일 뿐 핵 포기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