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인 이민웅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가 28일 각각 정년 퇴임식과 고별 강연을 한다. 두 교수는 학자로서 연구 활동 외에도 노무현 정권의 편향된 언론 정책에 대해 학계에서는 드물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 교수는 고별 강연에서 ‘저널리즘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내용을 담았고 김 교수는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보’라는 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년 퇴임식에 앞서 두 교수를 만나 20여 년 동안 학자의 길을 걸어온 소감과 최근 언론 방송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언론의 진짜위기는 민주화이후 왜곡된 ‘캠페인 저널리즘’ 우려”
정년퇴임 이민웅 한양대 교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관한 TV 보도를 분석한 한국언론학회 보고서의 총책임을 맡았던 것이 학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어떤 TV 분석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충실한 연구이자 보고서였다고 자부합니다.”
이민웅(65)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편파적’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탄핵방송 보고서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함께 참가했던 동료 학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당시 편파성을 판단할 때 그 방향성이 조금이라도 불분명하면 모두 중립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라는 말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68년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해 14년간 근무하다 1981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오리건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된 늦깎이 학자.
“40년간 저널리즘과 관계된 일을 해오면서 한국 언론을 평가하자면 조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일부에선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을 폄훼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진짜 위기는 민주화 이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위기의 핵심으로 언론이 ‘객관적 관찰자’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변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언론이 자신의 이념과 논지에 맞는 사실은 크게 보도하고, 맞지 않는 사실은 축소하는 캠페인 저널리즘 혹은 ‘성전(聖戰)’ 저널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이럴 경우 진실과 공정보도는 물론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뿐입니다.”
특히 최근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을 둘러싼 보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널리즘의 본질인 △진실성 △시민에의 충성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성은 부분적 진실이 아닌 ‘종합적 진실’을 의미합니다. 보도 전체가 하나의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보면 거친 방법으로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했습니다. 하지만 언론 자유는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는 인터넷 매체와 블로그의 등장으로 인한 저널리즘의 변화에 대해선 “정보의 소스가 다양해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정보가 범람하는 부정적 측면도 걱정된다”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의견이 난무해 순식간에 괴담 수준의 사회적 의제가 만들어져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공공 문제에 대한 식견을 갖추지 못한 시민은 선동적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힘겹게 성취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교수는 정년퇴임 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저널리즘 교과서를 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퇴임식은 28일 오후 6시 반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 19층 신세계홀에서 열린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채널 재조정으로 공영성 강화 KBS,국민신뢰 회복 힘써야”
정년퇴임 김우룡 한국외대 교수
“일찍이 KBS는 ‘공영을 표방하는 상업적 관영방송’이고, MBC는 ‘공영을 표방하는 관영적 상업방송’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이제 우리 방송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입니다.”
김우룡(65)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난맥처럼 얽힌 한국의 공영방송의 재정비를 강조했다.
그는 1968년 MBC 개국을 앞두고 1기 공채로 입사해 16년간 PD로 일했으며 1985년 학계로 옮겼다.
김 교수는 고별강연에서 국내 방송계의 10가지 과제와 전망을 제시한다. 그는 첫 과제로 KBS MBC SBS EBS 등 국내 방송의 ‘정체성 찾기’를 꼽았다.
“KBS 수입의 60%가 상업광고에서 나오는 현실에서는 공영성을 추구하기 어렵습니다. 공영방송은 상업방송이 만들 수 없는 의미와 가치가 담긴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합니다. BBS, NHK 등 세계적인 공영방송의 기능은 국제방송과 교육방송입니다. 이를 외면한 KBS는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김 교수는 KBS의 공영성 강화를 위해 KBS 2TV와 EBS의 기능을 서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KBS 2TV 민영화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1TV와 2TV를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KBS 2TV가 교육방송을 하고, EBS는 SBS와 같은 종합방송으로 민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방송계 인력 낭비의 사례로 KBS MBC SBS 등 방송사별로 운영하고 있는 송신 중계소를 꼽았다. 그는 “정연주 전 KBS사장이 KBS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KBS 송신소에 유휴 인력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할 정도”라며 “선진국처럼 송신 중계소를 통합 운영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방송통신위원회에 음란·폭력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프로그램 심의제도 자율화 △표준 FM방송 등 주파수 제도 개선 △방송발전기금 징수 폐지 △국민생활시간조사 정기 실시 △지나친 편성규제 완화 등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지난 40년간을 돌아보며 “방송계의 하드웨어는 커졌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과 제도, 운영 등 소프트웨어는 제자리에 있는 ‘문화 지체’ 현상이 심각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1970년대 제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는 PD가 카메라맨과 함께 필름을 붙이고, 내레이션 원고까지 썼습니다. 요즘엔 최첨단 장비와 인력이 투입되지만 ‘열정’과 ‘혼’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PD는 새 인물을 발굴하는 ‘스타 메이커’여야 하는데, 요즘은 PD 스스로 ‘스타’가 되길 꿈꾸는 것 같습니다. PD 저널리즘이 대표적이지요.”
그는 27일 취임한 이병순 KBS 사장에 대해 “정연주 전 사장 거취와 관련해 사분오열된 KBS 내부의 통합과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며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한 채널 재조정, 광고 축소 및 폐지와 수신료 인상 등의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별강연은 28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