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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 3년전부터 내사… 작년 5월까지 ‘北찬양 강연’

입력 | 2008-08-28 02:57:00

女간첩이 들여온 CD와 약품수원지검은 위장 탈북했다가 검거된 여간첩 사건의 증거물을 27일 공개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여간첩 원정화 씨의 사진이 실린 앨범과 공작금 마련을 위해 들여온 약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재명 기자


北영사관 접촉 파악하고도 검거 안해

50차례 강연… 軍장병 체제선전 노출

명함 건넨 장교 e메일 해킹 가능성도

합수부 “간첩 사건은 장기간 내사 불가피” 해명

■ ‘지각 검거’ 문제없나

위장 탈북 간첩 원정화 씨는 수사기관의 은밀한 내사가 진행되는 동안 군 장병들에게 50차례 이상 안보강연을 실시하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기무사령부에 따르면 원 씨는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일선 군부대에서 안보강연을 하면서 ‘아리랑 축전’과 ‘조선의 노래’ 등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영상물 CD를 상영했다. 또 ‘북핵은 체제 보장용’ ‘6·25전쟁은 미국 일본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북한의 주장을 선전하기도 했다.

북한의 간첩이 국가안보의 주축인 군 장병들을 상대로 공공연하게 정신교육을 한 셈.

당시 기무사는 원 씨로부터 문제의 CD를 회수하고 경고했지만 원 씨는 군 당국을 속이고 같은 내용의 CD를 상영하거나 북한 찬양 발언을 하다 지난해 5월 안보강사에서 제외됐다.

원 씨가 강사로 선정된 데 대해 기무사는 북한에서 남한의 경찰지구대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 분주소에 근무해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 감안됐다고 설명했다.

안보강사는 통상 일선 부대가 요청해 오면 기무사가 자체 탈북자 자료와 경찰 및 국가정보원의 관련 자료를 검토해 적임자를 선발한다는 것.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기자

원 씨는 기무사와 경찰이 2005년 5월 내사에 착수한 이후 7개월여간 안보강사로 활동했고, 그 결과 일선 군 장병들은 북한의 체제 선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원 씨가 군 장교 명함 100여 장을 중국에 있는 북한 보위부 지부에 전달한 뒤 일부 장교의 e메일이 해킹을 당했다는 의혹도 충격이다. 만일 사실로 드러난다면 장교들의 신변 보안이 너무 허술하다는 점이 확인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 기무사 국정원이 2005년 5월 내사에 착수한 뒤 3년여가 지나서야 원 씨를 검거하고 나선 점에 대해서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기무사가 지난해 3월 원 씨가 중국 주재 북한영사관에서 북한 찬양 CD를 가져왔다는 결정적 정황을 확보한 뒤에도 원 씨가 계속 안보강사로 활동하는 한편 군 장교들과 교제하며 군 기밀을 캐고 다녀 수사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3년 반 동안 내사를 하고 왜 지금 발표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간첩 사건 수사의 특성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간첩 사건은 5년 넘게 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 사건을 공개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세였으나 지난해 말부터 원 씨가 세 차례나 일본을 드나드는 등 일본으로 거점을 옮길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달 15일 중국에서 막 귀국한 원 씨를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합동수사본부는 당초 28일 이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일부 신문에서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유예하는 것) 약속을 파기하고 27일 이를 보도하는 바람에 서둘러 이날 오후 3시로 발표를 앞당겼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