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이 편안한 사찰음식 3가지
《비 내리는 금요일 오후였다. 경기 평택시에 있는 수도사에 도착하자 주지 스님인 적문 스님이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을 차려 내오신다. 작은 종지에 조촐하게 오른 산초장아찌와 무장아찌 반찬, 그리고 연자죽 한 대접. 연씨를 갈아 만든 연자죽을 수저로 뜨니, 죽 속에 들어간 초가을 대추 맛이 그윽하게 씹힌다. 비는 연방 추적추적 내렸지만 배 속은 든든하고 따뜻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사찰 마당을 둘러보니 어른 손 세 개를 합친 정도의 큼지막한 연잎이 연못에 가득했다. 왠지 몸이 가볍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적문 스님은 “진흙탕에서 피지만 결코 오염되지 않는 연은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몸속의 기운을 잘 돌게 해 준다”며 “청정한 제철 채소로 조리하는 사찰음식은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슬로푸드(slow food)’이자 치유식”이라고 말했다.》
●조미료-향신료 없고 맵고 짜지 않아 위장부담 적어
적문 스님은 사찰음식을 조리하는 데에는 세 가지 법도가 있다고 했다.
첫째, 청정(淸淨)이다.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가 깃들지 않은 청정한 채소로 만든 깨끗함이다. 고기는 물론이고 젓갈이나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 등 냄새 나는 오신채(五辛菜)는 절대로 사용해선 안 된다.
둘째, 유연(柔軟)이다. 짜고 맵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음식에 자극이 많으면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의 위장에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셋째, 법(法)과 이치에 합당하다는 뜻의 여법(如法)이다. 양념을 하더라도 단 것, 짠 것, 식초, 장류 순서로 넣어야 하며, 골고루 적당하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양념은 채소의 독특한 맛을 살리지 못한다.
적문 스님은 “이 같은 법도를 어기고 음식을 만들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며 “사찰음식은 조리법이 간단해 보이지만 조리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음을 느슨하게 해 준다”고 설명했다.
●현대인을 위한 참살이 음식
최근 ‘산사의 아름다운 밥상’이란 책을 펴낸 이경애 북촌생활사박물관장은 전국 12개 사찰을 찾아다니며 대표적인 사찰음식 33가지를 소개했다.
이 관장은 이 책에서 “소박한 산사의 밥상은 밥과 나물 반찬 서너 가지가 전부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썼다. 또 충남 서산시 개심사 스님의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
“청정한 재료로 담박하게 조리해서 간을 슴슴하게 맞추고 양은 약간 적은 듯 차려 천천히 감사한 마음으로 꼭꼭 씹어 먹으니 그야말로 위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또 자연에도 좋은 식사 아니겠어요?”
이 관장은 경남 산청군 대원사의 머위장아찌, 전남 순천시 선암사의 더덕 양념구이, 서산 개심사의 우엉장아찌, 경기 남양주시 수종사의 청국장 등을 대표적인 ‘절집의 겸허한 식사’로 꼽았다.
특히 대원사의 신세대 스님들은 즉석 김밥도 선보이고 있는데 단무지, 우엉, 오이, 당근, 느타리버섯볶음으로 오색을 맞춘 채소와 김과 밥, 고추냉이 양념장 등을 밥상에 올려 먹는 사람이 직접 싸 먹도록 한다고. 듣기만 해도 속이 편할 것 같은 식단이다.
●제철 사찰음식 만드는 법
적문 스님은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사찰음식으로 연잎밥, 연근 물김치, 방아잎 마지짐 등 세 가지 요리를 소개했다.
이들 요리를 추천한 이유를 스님에게 물었다.
“연잎은 비타민과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데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자양강장식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연잎밥에 들어가는 팥은 보양식품이고요. 한편 연근은 원기 회복과 정신 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마는 기운을 돋웁니다. 요즘 도시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조차 볼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몸에 좋은 제철 사찰음식으로 계절이 주는 선물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수도사는 매월 넷째 주 일요일 반나절 동안 사찰음식 만들기를 배울 수 있는 ‘템플 라이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월 둘째 주말에는 1박 2일로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사찰음식을 체험할 수도 있다.
평택=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연잎밥
재료
연잎 4장, 연근 100g, 연밥 반 컵, 찹쌀 3컵, 팥 반 컵, 물엿 반 컵, 소금 반 큰술, 잣 조금
1. 연밥의 단단한 껍질을 깬 후 속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쪼개 가운데 쓴맛이 나는 씨눈을 떼 낸 다음 생수에 소금을 풀고 3시간 정도 충분히 불려둔다.
2. 연근은 껍질을 벗기고 2∼3mm 두께로 썰어 먹기 좋게 2∼4등분한 후 살짝 찐다.
3. 찹쌀은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 불리고 팥은 삶는다.
4. 깨끗이 씻어 물기를 없앤 연잎을 펼쳐 놓고 준비해 둔 연근, 연씨, 찹쌀, 팥을 놓은 후 남은 잎으로 감싸면서 짚이나 실로 묶어 찐다.
5. 한번 찐 것들을 들어내 연잎을 헤치고 밥을 뒤적이며 물엿, 잣,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다시 싸서 푹 쪄낸다.
▒연근 물김치
재료
연근 200g, 미나리 10g, 배 1/4개, 붉은 고추 반 개, 풋고추 반 개, 감초뿌리 또는 감초물 반 컵, 소금 약간, 대추 1개, 밤 1개, 다진 생강 약간, 고춧가루 3큰술, 잣 약간
1. 연근을 1∼2mm 두께로 얇게 썰어 식초물에 2시간쯤 담가 아린 맛을 우려낸 다음 소금물에 담가 약하게 간을 한다.
2. 미나리, 밤, 배, 대추, 붉은 고추, 풋고추는 채를 썬다.
3.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을 외올로 성기게 짠 베에 싸서 여덟 컵 분량의 물에 넣어 주물럭거려 매운맛만 우려내 국물을 만든다.
4. 만든 국물에 준비한 야채를 모두 넣고 감초물을 부어 하루쯤 익혀 잣을 띄워 먹는다.
▒방아잎 마지짐
재료
방아잎 30g, 마 400g, 고사리 50g, 숙주나물 50g, 미나리 30g, 밀가루, 식물성 기름, 참기름, 양념장(진간장, 소금, 참기름)
1. 마는 30분 정도 물에 담가 아린 맛을 뺀 뒤 껍질을 벗겨 강판에 곱게 간다.
2. 숙주나물, 미나리, 고사리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숙주나물은 물기를 꼭 짜고 미나리, 고사리는 3cm 길이로 썬다.
3. 껍질을 벗긴 마를 강판에 곱게 갈아 간장과 참기름을 끼얹으면 마즙이 된다. 갈아둔 마즙에 소금을 조금 치고 준비한 채소를 넣어 고루 섞는다.
4. 팬에 참기름을 둘러 뜨거워지면 반죽을 얇게 놓아 노릇하게 부친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