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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녕]골프와 영어

입력 | 2008-08-29 02:58:00


티오프, 페어웨이, 벙커, 해저드, 그린, 오비, 파, 버디, 이글, 앨버트로스, 홀인원, 멀리건…. 모두 골프와 관련된 용어다. 스포츠 가운데 골프만큼 영어를 많이 쓰는 종목도 없을 것이다. 발상지가 영국이고 세계의 골프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이라서 그럴 것이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는 곧 세계의 골프협회로 통할 정도이다. 이들 협회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돈과 명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LPGA가 내년부터 2년차 이상의 모든 참가 선수를 대상으로 영어구술시험을 실시해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2년간 출전을 정지시키겠다고 했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대회를 개최하는 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유창한 영어로 기자들과 인터뷰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우승 연설도 가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골프 실력으로 LPGA 주최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이제 영어 실력까지 갖춰야 하니 한국 선수들의 고민이 클 것이다.

▷현재 LPGA 주최의 각종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가진 외국 선수는 26개국 121명이다. 이 가운데 45명이 한국 선수이다. 수적으로도 압도적이지만 실력도 발군이라 각종 대회 우승을 휩쓸거나 톱10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오르기도 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경이적’이라고 말했을 정도. 우리로서는 가슴 뿌듯한 일이지만 지나친 독주가 때론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주최 측인 LPGA와 스폰서 기업들의 눈엔 영어가 서툰 동양 선수들이 상위 랭킹을 싹 쓸어 가면 광고 효과도 떨어지고 자신들의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LPGA의 영어구술시험이 한국 선수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골프를 영어로 치는 것도 아닌데 지나치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미국 언론도 대체로 비판적이다. 일터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 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인권법에 어긋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적응력이 뛰어나다. 이참에 LPGA 주요 대회에서 보란 듯이 우승 연설과 언론 인터뷰를 유창한 영어로 하는 한국 골퍼가 많아지면 좋을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