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사막을 관통하는 시르다리야 강변 모래언덕에서 미역을 감은 뒤 쉬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소년. 상류 지역 국가들이 물 공급을 줄이면서 생긴 모래언덕과 적조 현상이 뚜렷이 보인다. 타슈켄트=정위용 특파원
상류국은 강물 가두고… 하류국은 연료공급 끊고…
소련 붕괴 후 물 - 가스 교환 중단 ‘자원복수’ 악순환
유엔 중재도 무용… ‘소금황사 - 집단동사’ 잇단 피해
“저걸 그냥 물로 보면 안 됩니다. 여기선 물이 생명이고 에너지입니다.”
낮 기온이 섭씨 38도가 넘은 28일 오후 우즈베키스탄 시르다리야 강 철교 아래. 강 주변 마을에서 소를 몰고 나온 우즈베키스탄 농민들은 강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름철 중앙아시아 사막지대를 통과하는 강물은 적조 때문에 붉은색으로 얼룩져 있었으며 강변에는 물이 줄면서 하얀 모래언덕층이 생긴 자리가 선명했다.
농민 세르게이 아파샤예프 씨는 “작년 겨울 우즈베키스탄 인들이 타지키스탄 인들에게 너무 모질게 굴어 강물이 훨씬 더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이웃 국가 타지키스탄에 보내는 천연가스를 끊어 주민 39명이 동사했던 일을 떠올렸다.
올해 물 부족은 타지키스탄의 복수전이라는 게 농민의 얘기였다. 시르다리야 강 상류에 있는 타지키스탄 정부가 올해 수력발전소 22개를 건설하며 물을 가둬 하류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농가가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300km 떨어진 사마르칸트 시 진입로를 가로질러 흘렀던 강은 물이 말라 바닥이 보였다. 진흙으로 덮인 강바닥 가운데에는 가늘게 물이 흘렀던 자국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60세가 넘은 사마르칸트 노인들은 “이런 물 부족 사태는 구소련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 주민과 타지키스탄 주민은 공산당의 감독 아래 물과 가스를 맞교환했다. 겨울철 혹한기에는 하류지역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이 전기와 가스를 상류지역으로 보내고 여름철에는 저수지를 갖고 있던 상류지역 공화국들이 물을 방류했다.
강 하류 국가들의 물 공급이 크게 줄어든 시기는 1990년대 말. 물과 연료 교환의 중재자였던 소련이 사라진 뒤 상류지역의 공화국들은 수자원을 무기화했다. 상대적으로 잘살던 하류지역의 국가들이 소련 붕괴 뒤 경제난으로 에너지 지원을 줄이거나 끊자 상류지역의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더 많은 물을 가두거나 썼다.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 통치 시절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던 농업용 관개수로를 대폭 늘린 것도 그때였다.
사태가 악화되자 유엔이 중재에 나서 수자원 보유국과 연료자원 부국이 협력할 수 있도록 각종 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석유와 가스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이런 조약도 휴지로 변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저수지 통제 때문에 이 나라에 천연가스를 싸게 공급하던 우즈베키스탄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가스 생산량의 24%를 제값을 받고 다른 나라에 팔고 있다.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 함께 중앙아 3대 빈국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고유가 덕택에 경제성장률이 9%로 올라가 이웃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고유가 시대에 수자원 부국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상류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거나 댐과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 결과 하류는 죽음의 강으로 변하고 있다.
중앙아의 양대 물줄기인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이 합류하는 아랄 해를 다녀오는 여행객들은 요즘 ‘소금황사’라는 특이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소금황사란 아랄 해 강바닥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면서 바닥에 남아 있던 소금 알갱이가 모여 공중에 모래처럼 떠다니는 현상.
견제민 주 우즈베키스탄대사는 “아랄 해 남쪽으로 200km 지점에서도 소금황사가 일어 주민들이 안구질환과 폐결핵에 시달리는 등 도시가 초토화했다”며 “물과 가스의 맞대결을 막자는 것이 국제사회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타슈켄트=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