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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선생님은 ‘순수의 대리인’, 훈련교관이 아닙니다

입력 | 2008-08-30 02:59:00


◇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조너선 코졸 지음·김명신 옮김/269쪽·1만2000원·문예출판사

“선생님은 글로벌 기업의 하수인도, 국가를 위한 훈련교관도 아니며 스스로 그런 존재로 여기도록 강요돼서도 안 됩니다. 교사는 실력있는 전문가인 동시에 순수(純粹)의 대리인으로서 고귀한 운명을 지녔습니다.”

어느 날 저자에게 미국 보스턴 저소득층 거주지의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은 프란체스카(가명)라는 교사가 진정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자문하는 편지들을 보내온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장들이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1964년 보스턴의 가난한 동네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퇴임한 뒤에도 빈민 거주지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젊은 교사들에게 조언하고 미국 교육의 문제를 지적한 책들을 펴냈다.

저자는 어린 학생들과 신뢰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강조한다. 교육정책의 입안자들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 형성되는 신비한 힘과 빛나는 기운’, 어린 학생들의 몸짓, 아이가 왜 우는지 보려고 교사가 책상 곁으로 다가가 몸을 기울일 때 쳐든 아이의 얼굴 같은 일상을 외면한 채 성적과 결과만 요구한다고 비판한다. 어린 학생들과 교감하는 것이 교육과정을 진도에 맞게 나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부모와의 교감도 중요하다. 저자는 미국의 많은 젊은 교사가 저소득층 가정의 학부모가 가정통신문에 답하지 않거나 학부모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젊은 시절 무작정 학생의 가정을 찾아가서 가족과 가까워지고 아이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감 있고 교양 있는 학부모들과만 친하게 지내려 한다면 성채(학교)를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글에서 틀린 문법을 고치는 것보다 아이들의 좋은 생각과 경험을 풋풋하고 생기 있게 종이에 옮기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작문에서 실수한 철자를 고치지 않고 학급게시판에 전시한 교사의 사례를 소개한 뒤 좋은 문장과 표현 목록을 획일적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미국 교육부를 비판한다. 미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작문을 전부 바로잡은 뒤 전시한다.

저자는 또 지나치게 세밀하게 지정된 수업계획안과 이를 평가하는 시험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진다. 치밀한 수업계획안은 ‘창의적이지만 수업계획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질문을 가로막는다. 저자는 이런 양상을 마음이 끌리는 거리에서 내려 이리저리 걸어보지도 못하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버스에 비유한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매년 표준화된 고부담 시험(high-stakes testing)을 봐야 한다. 낙제율이 높은 학교는 지원금을 삭감당한다. 이런 학교들은 변두리나 가난한 동네에 있는데 그동안 받아온 최저 수준의 지원금마저 줄어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립학교가 사설 시험준비기관에 돈을 내고 학생들의 시험 준비를 의뢰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이 공교육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40여 년간 직접 학생을 가르치고 교사들에게 조언한 생생한 사례를 바탕으로 진정한 스승의 길을 제시한다. 원제 ‘Letters to a Young Teacher’(2007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