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위치한 삼성토탈 대산공장. 330만 m²(약 100만 평) 규모의 공장 한쪽에서 5280m²(약 1600평) 규모의 올레핀전환설비(OCU) 시설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프로필렌(자동차 범퍼나 전자제품 케이스 등을 만드는 소재)은 지름 15cm 크기의 파이프를 통해 바로 옆 LG화학과 롯데대산유화 공장으로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른 2개의 파이프로는 두 회사에서 삼성토탈로 보내는 프로필렌의 원료(C4 유분)가 들어오고 있었다.》
국내기업들 중복투자 탈피 ‘윈윈 모델’ 모색
삼성토탈 등 화학3사 원료-제품 주고받아
라이벌 기업간 공동연구-합작법인 설립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내 기업 간 ‘적과의 동침’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중복투자 등으로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을 해왔던 기업들이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협력을 통해 윈-윈
삼성토탈과 롯데대산유화는 같은 대산유화단지 내에 있지만 2년 전 각각 450억 원씩을 투자해 연간 10만 t가량의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OCU 공장을 따로 지을 계획이었다. LG화학도 자체 OCU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었다.
하지만 삼성토탈의 제안으로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삼성토탈이 혼자 650억 원을 투자해 20만 t 규모의 OCU 공장을 지어 프로필렌을 생산하고, 원료는 롯데와 LG화학에서 공급받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생산된 프로필렌은 두 회사에 각각 8만 t과 2만 t씩 나눠주기로 했다. 이 실험은 3사 모두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수백억 원의 공장 설립 비용을 줄이고 원료와 제품의 안정적인 확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재학 삼성토탈 기술기획팀장은 “원료 공급과 제품 분배에 대한 서로 간의 믿음이 없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었다”며 “아직도 서로 협력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 글로벌 경쟁에 눈 돌려야
오랜 ‘경쟁’ 관계인 SKC와 코오롱은 올해 4월 계속 적자를 보고 있던 자사(自社)의 폴리이미드(PI) 필름사업을 분리해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에 밀려 세계 시장에서 늘 ‘마이너’ 신세를 면치 못했던 두 기업의 합작회사는 세계 3위의 업체로 뛰어올랐다. 원재료 공동구매 등을 통해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다는 게 양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배영호 코오롱 사장은 “우리의 경쟁 상대는 국내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 있다”며 “합작회사를 반드시 성공시켜 새로운 협력 모델을 우리 기업들에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국내 기업 간 자율적 ‘협력’은 과거 몇 차례 있었으나 성공 사례는 드물다. 규모는 작지만 SK케미칼과 삼양그룹이 2000년 설립한 폴리에스테르 부문 통합법인인 휴비스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규모나 업종에 관계없이 활발한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LG화학, SK에너지 등은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 제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배급사와 극장의 반발로 사업이 답보 상태이긴 하지만 롯데시네마와 CJ CGV는 올해 1월 극장 디지털화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벌이기 위해선 국내 기업 간의 중복투자와 과열 경쟁을 줄일 수 있는 창조적인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산=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