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맏아들 이름은 톰(토머스)이다. 그의 얼굴은 비록 검긴 하지만 놀랄 만큼 대통령의 얼굴과 닮았다고들 한다. 그 소년은 10세 또는 12세로서, 듣기로는 이 어린 물라토(흑백 혼혈) 대통령은 인근 지역에서 엄청 중요한 인물인 척한다고 한다.”
1802년 9월 1일 미국 버지니아 주의 연방파 신문 리치먼드리코더에 실린 이 기사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제퍼슨이 오래전부터 샐리 헤밍스라는 물라토 노예 소녀를 정부(情婦)로 두고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내용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흑인 노예와 관계를 맺어 여러 자식까지 뒀다니? 더욱이 그는 모든 인간에게 천부인권을 부여한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 분을 이렇게 중상하다니….
그럼에도 제퍼슨은 정작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허위 보도라서 그랬을까? 물론 이 기사의 필자가 거짓말쟁이에 술주정꾼, 스캔들 장사꾼으로 악명 높던 제임스 캘린더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기사는 제퍼슨에게 그다지 정치적 타격을 주지 못했고 제퍼슨은 이후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는 등 흠결 없는 인격자로서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는 200년이 넘도록 역사적 논란의 불씨로 남아 제퍼슨을 괴롭혀 왔다.
제퍼슨이 사후 유서를 통해 헤밍스 자식들을 모두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는 등 이들에게 상당한 특혜를 베푼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한때 제퍼슨의 아들을 자처하는 사람의 회고록도 출간됐다. 물론 이런 주장이 허위임을 보여주는 증거도 적지 않았다.
‘제퍼슨 스캔들’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1998년 현대 과학기술에 맡겨져 다시 한 번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양측 후손들의 DNA 검사를 해보니 제퍼슨이 헤밍스가 낳은 자식 중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어 학술적 논쟁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 스캔들과 맞물리면서 일군의 보수 진영 학자들이 별도의 연구팀을 구성해 그간의 연구결과를 반박하며 ‘성인 제퍼슨 지키기’에 나서는 등 정치적 색깔 공방 양상까지 띠게 됐다.
제퍼슨의 노예 후손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역사학자 대부분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진위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가 아직 나오지 않은 만큼 결론은 여전히 유보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