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수로는 “쇼 프로는 영화 출연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좋은 선생으로 인정받지 못해 통곡하는 장면에는 좋은 배우로 관객과 만나고 싶은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 김경제 기자
‘꼭짓점댄스’와 ‘김계모’.
영화배우 김수로(38)의 현재를 요약하는 두 단어다.
데뷔 후 15년. 대중적 인기를 안겨준 것은 영화가 아니라 최근 3년 새 출연한 TV 쇼 프로그램이다. 코믹한 카리스마의 꼭짓점댄스는 2006년 온 국민을 춤추게 했다.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천데렐라’(배우 이천희)를 괴롭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김계모로 뜨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울학교 이티’(박광춘 감독)의 개봉(11일)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 영화는 퇴출 위기의 체육교사가 영어교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학원코미디물. 그는 “울학교 이티를 찍기 위해 김계모 캐릭터를 맡았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영화보다 TV에서 익숙한 얼굴이 됐습니다.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울학교 이티 주인공인 체육교사처럼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신지.
“주연 맡은 영화 두 편(‘잔혹한 출근’과 ‘쏜다’)이 잇따라 망했는데 어떻게 편하게 삽니까. 그 이후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확 줄었어요. 배우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 찾아 돌아다녔더니 사람들이 ‘영화판 힘드니까 방송 하면서 쉬라’고 하더라고요.”
―쇼 프로그램 고정출연 제의받고 오래 고민했다던데….
“영화배우가 오락 프로그램 나가는 게 편할 리 없잖아요. 앞날이 걱정돼서 석 달 동안 잠도 잘 못 잤어요. 고심 끝에 ‘대중과의 스킨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돈 보고 편하게 살려는 거면 왜 한 프로그램만 하겠어요. 영화 안 하고 여러 군데 나가지. TV 쇼 출연은 영화를 위한 겁니다. 뒤따르는 고민과 아픔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내 몫이죠.”
―영화제에 참석해도 김계모라는 수식이 붙더군요. 기분이 어떤가요.
“허전하죠. 하지만 좋아요. 그렇게 사랑받고 있는 거니까. 영화에 매진해서 더 좋은 배우가 되는 것? 누구보다 내가 수만 배 더 절실히 원합니다. 지금은 제 운이 이런 거죠. 더 노력할 거예요. 포기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화로 성공 못하면 자살할 생각 수없이 해 봤어요. 겉으로는 늘 허허 웃지만.”
―배우의 목표가 인기만은 아니잖아요.
“20여 개의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사랑받을 것 같은 작품 골라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을 때, 아픔은 끝이 없어요. ‘잔혹한 출근’ 망했을 때는 하나쯤이야, 그랬죠. 전화위복이 되겠지…. 그런데 ‘쏜다’가 또 망하니까 관객이 나를 싫어하나, 도대체 뭘 보여줘야 하나, 미치겠더라고요. 울학교 이티 결정하면서 여러 사람한테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망하면 나한테 주연 맡기지 말라’고.”
―세 번째 단독주연입니다. 모두 코미디 영화인데, 이미지 굳어질까 조급하지 않나요.
“왜, 뭘 조급해하죠? 평생 할 일인데. 이왕 코미디 하는 거 ‘김수로 코미디’의 정점을 찍고 그만 하자 생각하고 있어요. 남 웃기는 능력은 충분해요. 지금까지 영화 속의 모습은 제 일상의 모습보다 안 웃깁니다. 내 성에 안 차는데 남들이 웃긴다고 하니 창피하죠. 정점을 찍고 나면 방향을 틀 거예요.”
―방향을 바꾸는 게 말처럼 쉽나요. 김수로 씨가 지금 당장 허진호 감독의 멜로 영화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말 되는 소리냐’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뭐든 ‘어느새’ 바뀌는 게 좋습니다. 5∼10년 두고 코미디 비중을 천천히 줄여가는 거죠. 어느새 저 배우가 그런 것도 하는구나, 이렇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영화 끝 부분에서 공개수업 뒤 학생들의 혹평을 듣고 엉엉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던데요.
“시나리오에 없던 것을 제가 제안했죠. 제자나 스승 앞에서는 울지 못하지만 친구 곁이니까, 한번쯤 터뜨리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촬영 들어가자마자 묵힌 감정이 너무 크게 터졌어요. 열정을 갖고 살았는데. 원망인지, 섭섭함인지 마음속에서 크게 밀려나와 통곡을 했습니다. 컷 떨어지고 10분 정도 혼자 구석에서 엉엉 울었죠.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이에요. 힘들었던 만큼.”
―이번 역할, 모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경기 안성시 효명중 김평엽(52) 선생님이세요. 등단한 시인이시죠. 고교 2, 3학년 담임이셨는데 그분이 제게 해주신 그대로 연기했습니다. 인생의 스승을 표현하는 일인데, 자연히 한 장면 한 장면 진심을 담을 수밖에요. 그래서 이번엔 정말, 자신 있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영상제공=울학교이티제작사
▲ 참치 김치 이티 - 울학교 이.티 주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