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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공종식]美대학졸업장 따기 전에

입력 | 2008-09-02 02:57:00


“올해 하버드대 졸업예정인 외국인 학생 중 상당수가 사실상 추방 명령장을 받았다.”

지난해 4월 9일자 하버드대 교지인 ‘크림슨’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사연은 이랬다. 외국인이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기 위해선 전문직 취업비자(H-1B)가 필요하다. 그런데 바로 직전 H-1B 6만5000개가 접수 당일에 소진되자 외국 출신 하버드대생 상당수는 신청도 해보기 전에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해마다 H-1B 신청 시즌이 되면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들은 몸살을 앓는다. 일부는 아예 포기하고 소액투자 비자를 신청하는 사례도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유학은 한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미 대학 학부에 바로 진학하는 학생이 큰 폭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면 탄탄한 미래가 보장될까. 미국 대학은 대학경쟁력에 있어서 여전히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면 영어 구사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한때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실력도 갖춘 인재가 적었을 때에는 국내 기업들이 이들을 채용하려고 ‘스카우트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그 같은 인력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이들도 국내 대학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취업전쟁’에 나서고 있다. ‘공급’(미국 대학 졸업생 배출)이 늘어나면 ‘시장가격’(좋은 직장과 대우)이 떨어지는 시장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서 나와 있는 한국 기업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지원서를 받았는데, 자격이 뛰어난 지원자가 많이 몰려와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미국 기업에 취업하기는 더 어렵다. 우선 H-1B 받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한국인 유학생보다는 경제규모가 더 큰 중국이나 인도인 유학생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기업들이 탐내는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비용’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대학을 마치려면 한국 대학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이 든다.

미국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던 지인 A 씨는 최근 딸이 미국에서 고교를 마치고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군데와 고려대 법대에 동시 합격하자 주저하지 않고 고려대 법대에 입학시켰다고 한다.

A 씨는 “일단 미국 대학 학비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졸업 후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한국 대학을 나오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비 등이 훨씬 비싼 미국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좀 더 꼼꼼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게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근무를 겨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어에 그치지 않고 중국어나 일본어 등을 추가로 공부하는 것도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한 지인은 미국에서 간호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해 딸을 미국 간호대에 입학시키기도 했다.

미국 대학졸업장이 갈수록 많아지는 시대. 단순한 ‘쏠림현상’에 따른 무조건적인 미국 대학 지원보다는 비용과 이후 취업전망 등을 꼼꼼히 비교하는 ‘투자 손익계산서’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공종식 국제부 차장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