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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선정적 연애풍속도 앞다퉈 방영

입력 | 2008-09-02 02:57:00

10, 20대의 위태로운 연애담을 다룬 케이블TV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리브 ‘연애불변의 법칙 커플 브레이킹’, 엠넷 ‘이특의 러브파이터’, ‘추적 엑스보이프렌드’(왼쪽부터)는 이들 세대 연애의 비정한 현실을 담고 있다.


《제작진이 투입한 작업녀=(술에 취해) 내가 너를 정말 좋아하면 어떻게 할 건데?

남자친구=일어나자 누나. 잘 거면 그냥 모텔 가서 자. 어떻게 할래, 누나? 나는 상관없어.

내레이션=작업녀를 데리고 모텔로 가는 남자친구.

(남자의) 여자친구=(모니터로 남자친구를 보며) 더러워!》

지난달 13일 방영된 올리브 ‘연애불변의 법칙 커플 브레이킹’(수 밤 12시)의 한 장면. 이 프로그램은 서로 사귀는 20대 남녀가 출연해 문제점을 들어보고 처방을 내리는 것을 취지로 내세우고 있다.

이날 방영분에서는 박모(21·여) 씨가 연락이 뜸해진 남자친구 최모(21) 씨의 ‘바람기’를 알아보고 싶다고 의뢰했다. 박 씨는 최근 최 씨의 지갑에서 모텔 이름이 적힌 카드 영수증을 발견하고 의심해 왔다. 제작진은 연상의 작업녀를 투입해 최 씨의 속내를 떠보기로 했다.

최 씨는 작업녀의 유혹에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만취한 최 씨가 작업녀의 쇄골에 올려놓은 과자를 집지 않고 먹거나 팔에 떨어진 안주를 핥아 먹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6일 동안 모두 10회 재방송됐다.

○ ‘부부클리닉’의 20대 버전

케이블 TV가 20대 남녀의 추악한 연애 이면에 눈을 돌리고 있다. tvN ‘독고영재의 스캔들’ 등 기혼 남녀의 불륜이나 가정폭력을 다루는 데서 이제는 20대 남녀의 배신과 바람, 돈 문제, 폭력 등을 다루는 것이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10, 20대 버전인 셈.

엠넷의 ‘이특의 러브파이터’(목 오후 5시)는 남녀의 말싸움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20대 남녀들이 출연해 말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을 벌인다.

출연자들은 연인의 신체(‘너 앞니 튀어나왔지? 너랑 뽀뽀할 때마다 입술 찍혀 가지고 뒤질 거 같아’)나 성격적 결함(‘헤어지자고 했는데 혈서 쓴다고 칼 가지고 와서 손가락 자르려고 하고 문밖으로 뛰어내리려 했잖아, 뺨도 때리고’) 등을 그대로 내뱉는다. 34회에서는 고모(19) 씨와 유모(20) 씨가 출연해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 씨가 유 씨에게 부모의 지갑을 털어오라고 시켰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도 나왔다.

엠넷의 ‘추적 엑스보이프렌드’(금 오후 11시)는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헤어진 연인의 현재를 몰래카메라로 추적하는 프로그램. 가끔씩 의뢰인과 전 애인, 전 애인의 새 애인이 삼자대면하는 상황도 빚어진다.

○ 출연료 50만 원에 촬영 동의

‘이특의 러브파이터’ ‘추적 엑스보이프렌드’를 기획한 엠넷미디어 한동철 팀장은 “이제 핑크빛 로맨스를 믿지 않는 시청자에게 거짓말로 포장되지 않은 남녀 관계를 사실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높은 수위의 애정행각이나 막말이 오가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상황 등 보기 민망한 내용이 적지 않다.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실명과 함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술 취한 채 모텔에 가거나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도 그대로 나온다.

한 제작자는 “신청자의 부탁을 받고 찍은 사람들에게 촬영 후 동의서를 받고 출연료(회당 50만 원 선)를 주면 큰 문제가 없다”며 “첫 방송 뒤에 이들이 항의를 해오면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중지 등의 조치를 내린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을 신청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반인이라는 것. 신청자는 한 프로그램당 일주일에 80∼100명에 이른다. ‘연애불변의…’ 조상범 PD는 “상대방의 바람, 원나이트 스탠드, 동거 등에 무덤덤해진 젊은이들의 출연 요청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TV에 나올 목적으로 남녀가 짜고 신청한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들은 15세 이상 관람가다. 그러나 케이블 TV 매체 특성상 제재가 쉽지는 않다. 당사자의 출연 동의를 얻은 거라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료방송(케이블 TV) 심의 담당자는 “케이블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지상파보다 과감한 소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처벌 기준이 지상파보다 덜 엄격한 편”이라며 “하지만 위 프로그램 중 일부는 시청자 불만이 제기돼 심의하고 있으며 심의규정을 위반한 증거가 포착되면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