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있으면 세계 어디든”5월 13일 오후 러시아 로스토프 주 타간로크 시에 있는 DI그룹 산하 자동차회사 타가즈의 조립생산라인. 이완구 충남지사(왼쪽)가 완성 단계의 자동차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가운데는 신준희 보령시장, 오른쪽은 안내를 하러 온 DI그룹 미하일 파라모노프 회장. 이 지사는 취임 이후 투자유치를 위해 5회에 걸쳐 10개국을 방문했다. 비행거리만 15만 km로 지구를 3.6바퀴 돈 셈이다. 사진 제공 충남도
2년새 35억달러 유치… 서해안 경제 ‘새 피’가 돈다
충남 보령시 주교면 관창공단. 공단이라기보다 목장이라고 할 만큼 잡초만 무성했던 이 공단 이곳저곳에서 최근 들어 불도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DI(Doninvest)그룹이 다음 달 6일 이 공단에 계열 자동차 회사인 타가즈의 자동차부품 공장을 짓기 시작할 것으로 알려지자 관련 기업들의 공장 설립이 빨라지고 있다.
이완구 충남지사와 신준희 보령시장은 5월 13일 러시아를 방문해 DI그룹 미하일 파라모노프 회장과 공장 설립을 위한 6억5000만 달러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1992년 조성된 관창산업단지(160만여 m²)가 오랜 미분양 상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충남도와 보령시는 이후 110여 개 기업이 주변으로 이전해 오겠다고 희망하자 선별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공단 용지의 추가 확보에 나섰다.
충남발전연구원 용역 연구결과 이번 투자유치를 계기로 2012년까지 보령시에는 자동차 관련 업체가 50∼60개 늘어나 10조 원가량의 직간접 생산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는 보령시 인구(8월 말 현재 10만7005명)의 절반 이상인 5만9000여 명, 고용은 3만2000여 명 늘어난다.
1건의 투자유치로 공단 미분양, 인구 감소, 불균형 발전, 고용 창출 등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일거에 해결되고 있는 현장이다.
○ 충남도, 외자유치사 새로 쓴다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세계 어디든지 달려가겠다.”
이 지사가 2006년 7월 민선 4기 취임 후 공격적인 외자유치를 공언한 뒤 국내 자치단체의 외자유치 판도가 달라졌다.
충남도에 따르면 민선 4기 이후 지난달 말까지 충남도의 제조업 분야(그린필드) 외자유치 실적(양해각서·MOU 기준)은 35억 달러(19건)로 국내 16개 시도 가운데 1위다. 단일 투자유치액(9억 달러·충남 아산의 소니-삼성전자 합작 LCD패널 제조 공장), 지자체 단독 유치액(6억5000만 달러·DI그룹), 총유치액 중 실제 입금액(14억6000만 달러)도 각각 1위다.
충남도 외자유치는 모두 시장과 고용을 창출하는 제조업 분야라는 것이 특징. 공장 설립이나 기술 이전을 동반하지 않고 단기적인 투자이익을 노린 투기성 외자는 오히려 잦은 매각 등으로 고용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점에 비춰볼 때에 외자유치의 질적인 면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외자유치 업종도 충남도의 전략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반도체, 자동차부품, 정밀화학, 산업용 가스 등이어서 지역 산업 전체의 경쟁력 증대라는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 외자유치 전법도 금메달감
DI그룹의 투자 유치는 치밀한 전략과 적시에 내린 결단의 승리였다. 충남도는 지난해 5월 이 회사가 국내 다른 지역에 투자를 타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국가정보원에 이 그룹의 건전성 여부를 확인했다.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자 곧바로 당시 통상부서 간부와 공무원을 10여 차례나 현지에 보내 협상을 했다. 관창공단의 용지 매입비 328억 원을 확보하기 힘들게 되자 외자유치용으로는 처음으로 2100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문제를 해결했다.
사후관리도 비결 중 하나. 충남도는 2005년 천안의 국내 전자재료 회사를 인수한 미국의 R&H사가 용지 확대를 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두 번에 걸쳐 주변 땅을 매입해 임대해 줬다. 또 이 지사 등이 수시로 회사를 방문해 투자를 설득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LCD필름 연구개발 기능을 옮겨온 데 이어 LCD필름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조공장을 세우면서 3억 달러가량을 추가로 투자했다.
하지만 원칙은 반드시 지키고 있다. 2006년 9월 네덜란드 반도체 부품 생산업체인 ASM사는 2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용수와 가스 등 인프라 외에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클린 룸’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인프라가 아닌 공장 설비는 지원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투자는 성사됐다.
○ 외자유치에 정부 지원 절실
충남도는 최근 지식경제부에 낸 ‘외자유치 활성화 건의서’에서 외국인 투자단지의 확대와 일반산업단지 및 농공단지 입주 외국인 투자회사에 대한 조세감면 범위 확대를 요구했다.
유연한 업종분류 적용도 건의했다. 충남에 제강분진 처리 공장을 세우려는 유럽의 Z사는 자국에선 제조업인 이 업종이 한국에서는 폐기물처리업(현재 업종분류는 안 돼 있음)으로 인식돼 투자에 애를 먹고 있다.
이 지사는 “정부가 지자체에 해외의 투자 정보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외자유치를 위한 지방채 발행 때 정부 지원분(75%)을 한꺼번에 지원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군의 부담분을 줄여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기업형 컨트롤타워’ 투자담당관실
즉시 집행 가능한 해외출장 예산 편성
“외국서 투자 의향” 정보에 다음날 출국
충남도 외자유치의 핵심 라인은 이완구 지사와 채훈 경제부지사, 이승곤 투자유치담당관과 18명의 담당관실 직원.
우선 이 지사나 채 부지사, 이 담당관은 ‘찍새’(투자자를 찍어주는 사람), 다른 직원들은 ‘딱새’(투자협상을 이끌어 내는 사람) 역할을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찍새와 딱새의 역할은 바뀌기도 한다.
충남도는 투자담당관실 조직을 계선조직이 아닌 기업형 팀제로 유연하게 바꿔 이 같은 역할이 가능하도록 했다.
투자기획과 기업유치, 홍보팀을 제외한 11명이 전문성을 토대로 디스플레이, 서비스, 자동차, 석유화학 분야로 나뉘어 투자유치 활동을 한다. 외자유치4팀(석유화학)은 행정 6급이 홀로 팀을 이루고 있다.
투자유치 전문 ‘외인부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KOTRA 부사장 출신인 채훈 씨를 경제부지사로 영입했고 그에 앞서 7월 충남도 서울사무소에 있던 전문 계약직 이승곤 씨를 서기관급 담당관으로 파격 채용했다. 이 담당관은 LG그룹 해외투자유치 분야에서 20년간 활동했다.
투자유치 라인은 모두 ‘오픈티켓’(아무 때나 탑승할 수 있는 항공권)을 사용해 언제라도 해외로 나갈 수 있다.
공무원이 해외출장을 가려면 연초에 국제통상과에 해외출장계획서를 낸 뒤 예산범위 내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고 여러 번의 심의를 거쳐 국외여행허가를 얻는다. 하지만 투자담당관실의 경우 2억 원가량의 해외여행 예산을 별도로 쓰기 때문에 이런 일반적인 행정처리 라인에서 벗어나 있다.
2007년 11월 유럽으로 투자유치 설명회를 나간 채 부지사가 “정수시스템 제조사인 스웨덴 발레니우스가 한국에 투자를 하려 한다”는 정보를 전하자 담당 직원들은 바로 다음 날 스웨덴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道경제자문 이은영 교수
“세금-노사관계등 기업환경이 열쇠”
“이제 외자유치나 기업유치는 한 국가의 생존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자체는 이를 통해 성장과 발전을 꾀해야 합니다.”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이은영(사진) 교수는 “유럽의 소국 아일랜드는 지난 10년간 1000여 개의 외국기업을 유치해 10%대의 괄목할 성장을 하며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부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에서 경영학(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고 대우경제연구소와 현대제철에서 근무한 그는 현재 충남도 경제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해외 직접투자는 생산기술과 경영기법, 전문 인력 등의 이동으로 한 국가와 지역의 산업 발달, 시장 활성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제조업 분야(그린필드)의 직접투자가 많은 충남도의 외자유치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외자유치를 유치액보다는 지역 산업의 변화와 고용 창출, 산업경쟁력 강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아일랜드는 12.5%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를 외국기업에 적극 홍보했고 이스라엘은 인텔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현금 5억 달러를 지원했다”며 “기업하기 편한 환경을 얼마나 차별적이고 매력적으로 설계하느냐가 외자유치의 성패를 가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해외 직접투자(FDI) 잠재력은 높지만 실제 실적은 크게 낮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세무, 노사, 지자체별 경쟁력 있는 산업클러스터 육성, 영어능력이 있는 고급 기술인재 육성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